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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육체 사이: 분리의 기술 단계

By 마야 인디라 가네쉬

인간의 진화적 계승자, 지능형 기계들을 만나는 중요한 현장에 젠더가 등장하는가? 성별화된 몸은 탈신체화, 그리고 이어서 사이보그로 구현된 기계와 인간 지능의 융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 N. 캐서린 헤일, 튜링 테스트에 대한 재고찰1

여기서는 여자인 이상 스스로의 몸을 편하게 느낄 없다. 나는 이런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단지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대상화한다.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나의 몸은 대상화된다.”
최양, 몰카 피해자2

여기, 바로 여기에 우리 몸이 있습니다. 웃고 우는 . 맨발로 풀밭에서 춤을 추는 . 몸을 사랑하세요. 열심히 사랑하세요. 저기 저들은 여러분의 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몸을 경멸합니다.”
베이비 석스,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Beloved)』

작년부터 나의 절친한 친구가 업무 컨퍼런스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벼운 불장난으로 시작한 그들의 관계는 이제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언가로 발전했다. 분명 성적인 관계로, 두 사람은 실제로 두세 번 성관계를 가졌을 테다. 하지만 둘은 전화 통화는 철저하게 피하면서 문자로만 대화를 주고받는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온 두 사람은 각종 의무와 육아에 시달리며 바쁜 삶을 살아간다. 이제 둘 다 직장을 옮겼기 때문에 둘 사이에 직업적인 공통점은 거의 없다. 남자가 내 친구의 트위터를 팔로우하지만 별다른 소통은 없다. 그는 사실 눈팅족이다. 누구나 한 가지 별난 부분이 있고, 두 사람의 경우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장치에서 발현되는 셈이다. 그들은 잦은 오프라인 만남이 서로를 실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해 만남을 자제해왔고, 사실 이 결정은 꽤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두 사람이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때로 내 친구는 호기심과 허영심이 기묘하게 뒤엉킨 채 자신의 누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가끔 그 이미지들이 더 ‘진짜’ 사진 같아 보이도록 캡션을 붙여서 작업에 필요한 장소, 조명, 분위기 등을 명시한다. “나는 ‘어떤 남자’를 위해 누드 사진을 만드는 기계가 아니야”라고 친구는 내게 말했다. 

종합해 보건데, 두 사람은 마치 퍼즐과도 같다. 재치 있고 자기비하적인 텍스트와 이모티콘이 달린 신체 부분들은 지리적 위치, 수천 개의 데이터 지점 및 사회적 도표에 연결돼 있다. 분할된 여성을 조립하는 것, 현재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시스템이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이거 ‘그런 거’야?” 나의 질문에 그녀가 허둥지둥 설명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사진일 뿐이야…” 그녀에게 보호, 관리, 경고, 혹은 도움이 필요한 건지, 과연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고자 애쓰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울리는 듯했다. “그 남자 좋아해? 너는 이게 맘에 들어? 그 사람이 네 사진 갖고 딴짓 하면 어쩌려고?” 내가 다그치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사이보그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1927년 프리츠 칸(Fritz Kahn)이 제작한 이미지 “산업 궁전으로서의 인간(Der Mensch als Industriepalast)”에 영감을 받아 이미 존재하는 기계 장치를 여성의 신체에 결합해 창작한 페르난도 비첸테(Fernando Vicente)의 작품 “Sintonizando -9 (Anatomy)”.

수백만 개의 이미지가 스마트폰, 데이터 센터, SNS 사용자, 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사이를 항시 떠다닌다. 인간은 생물군계로 이루어져 있고,3 마찬가지로 데이터 센터로 쏟아져 들어오고 나가는 각종 데이터가 우리를 구성한다. 인스타그램 필터를 적용한 입술 내민 표정의 셀카는 우리를 데이터베이스 슈퍼스타로 만들어 준다. 나아가 우리의 ‘진짜’ 정체성을 증명하기도 하며, 다양한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 가짜 얼굴을 생성하는 스타일GAN(StyleGAN)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트레이닝 데이터 세트를 채워 넣는다.4 피, 땀, 눈물과 같이 우리의 몸은 어플리케이션, SNS, 핏비트(Fitbit), 배란 어플리케이션 등과 같은 디지털 생리 컵으로 포착한 데이터를 배출한다. 이러한 (메타)데이터는 인터넷의 유지와 수익성으로 이어진다. 정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즉,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와 쇳덩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것이다.5 기계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와 문화, 나아가 직업과 성생활까지도 형성한다. 또한 봇(bot)들은 갖가지 괴롭힘과 슬픔을 검색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6 그리고 자본주의야말로 이 모든 것을 한데 묶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접착제다. ‘자유로운’ 온라인 상의 발언권과 목소리는 육체에까지 적용되지 않는다. ‘지역사회 기준’이 우리의 젖꼭지와 피를 단속하지만, 동시에 언어는 단지 선별적으로만 규제된다. 인터넷은 실존하는 장소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도 진짜다. 인터넷과 ‘실제 생활 공간(meatspace)’(혹은 기존에 ‘진짜’ 삶이라 여겨졌던 공간)과의 관계는 제도적 사고에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제도적 사고의 근간은 실제적이고 이성적인 인간(보통 시스젠더 백인 남자, 중산층, 카스트 제도 상류층 남자)이 절대 모순적, 편파적, 불법적, 혹은 판독하기 힘든 불안정한 존재가 아니라는 개념이다.

인터넷에 대한 각종 이야기 및 이론을 나의 친구나 그녀의 친구들과 같은 몇몇 여성들의 사례와 결합해 보자. 아래 열거한 여러 인물 및 단체의 활동을 통해 신체적 및 디지털 규제, 복제, 관능, 그리고 저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알렉산더 웨헬리예(Alexander Weheliye), 아샤 아추탄(Asha Achuthan), 코딩 라이츠(Coding Rights),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케피르와 베데타스(Kéfir and Vedetas), 매니페스트-노(Manifest-No), 미투 운동, 니샨트 샤(Nishant Shah), 라몬 아마로(Ramon Amaro), 사라 아메드(Sara Ahmed), 사라 샤르마(Sarah Sharma). 이를 통해서 우리가 가진 데이터 육체의 기쁨과 실망을 절충하기 위한 다양한 수사와 희망, 비유, 물질적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테다. 

사라 아메드의 표현을 빌리자면,7 이 글은 어두컴컴한 로비의 작은 의자에 앉아 여유 공간을 확보하려 열심히 꿈틀대는 엉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때로 우리가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여유 공간(wiggle room), 즉 숨 쉴 공간이다. 그런 여유로부터 상상력과 가능성이 비롯된다.” 또한 나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되묻기도 했다. “왜 뻔한 이성애규범적 속박 관계, 계약적 의무, 기밀유지협약(NDA) 같은 길로 가? 그런 건 이미 충분하지 않아? 내가 선택한 길이냐, 아니면 유출의 희생자가 되느냐, 둘 중에 하나잖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

이 이야기는 디지털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변형됐는지에 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알렉산더 웨헬리예8를 비롯한 흑인 연구(Black Studies) 학자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노예 수송선에 실려 대서양을 가로질렀던 흑인의 신체들은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여겨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작가 코도 에슌(Kodwo Eshun)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이야말로 “실존적 노숙, 소외, 전위, 비인간화”9의 측면에서 첫 현대인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바다 건너 농장, 또는 도시에서 유색인(흑인 및 ‘갈색’ 원주민)의 몸, 그리고 퀴어, 불가촉천민, 장애인의 몸은 그들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법적, 사회정서적, 도덕적, 정치적 질서를 완성했다. 과학, 사진, 골상학, 인상학 등과 같은 측량과 수량화 기술은 ‘인간’과 인간보다 못한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발달했다. 잠재적으로 인간을 변형시키는 인공지능(AI)과 인터넷을 논할 때, 역사를 통해 진행돼 온 인간다움의 분류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풍경은 이 역사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도로 자동화된 통계학 기반의 차별은 물론, 다양한 인간 분류에 대한 감시라는 불평등한 상황을 초래한다. 변형을 논함에 있어, 우리는 인간과 기계라는 변증법을 초월한 라몬 아마로의 주장을 살펴볼 수도 있겠다. 그는 “열망하는 흑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시스템을 통해 “표상을 거부하는 권리를 얻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다.10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처럼 “나는 이렇게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11

“나는 펨봇(fembot)도 아니고, 사이보그도 아니야. 이건 그 이상이야.” 나의 친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내가 뭘까? 누가 알겠어?” 고백하건대 나는 그녀의 단호하고 ‘이론만이 내 세상’이라는 태도가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느껴진다. 내가 상상하는 바는, 컴퓨터 윈도우 안에 격리된 욕망이 자그마하면서도 너무나도 고도로 암호화돼 있어 내 친구와 그 남자가 매번 각자 다른 때에 서로를 새롭게 해독하고 재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쇳덩이 밖에서, 육체 안에서.

나: “이성애자 남자가 그 정도로 성숙할까?”
그녀: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은 내 이론을 이해할 필요 없이 그냥 보기만 하면 돼.”

펨봇이란 여성에 기계가 더해진 이원론적 환상이자, 자신의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있는 20세기 이성애규범적이고 양분법적인 성의 이상향이다. 지속적인 성적 이용성, 하찮은 일들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적 매력, 힘, 유연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기계의 몸에 담겨있는 것이다! 펨봇은 우리의 욕망과 지각을 지배한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섹스 로봇 산업이 소비자와 제작자 사이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12 사라 샤르마는 신작 저서에서 남성중심(male-stream)적 반응이 “여성은 고장난 기계”라는 개념의 고정, 상향, 증강으로 이어진다고 제시한다. 이뿐만 아니라 남성 논평자들은 섹스 로봇의 인기와 불만을 호소하는 저항적 미투 운동 여성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로봇들은 불평하지 않는다.13 일본의 홀로그램 여자친구 아즈미 히카리와 같이, 여자들은 체육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는 것부터 기차표를 사는 것, 그리고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로 섹스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소소한 일을 처리하는 데 능하다고 샤르마는 지적한다. 

캐나다에서 불륜을 꿈꾸는 기혼자들의 웹사이트 애슐리 매디슨이 2015년 해킹을 당했을 때 밝혀진 것들을 생각해보라. 그 웹사이트에는 월등히 많은 수의 남성 가입비율에 비해, 여성 가입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운영자들은 각본이 짜여진 7만 5천 개의 여성 챗봇을 이용해 1천 1백만 명의 남성들을 친밀한 대화창으로 끌어들였다. 각각의 펨봇에게는 이름, 나이, 위치, 기본적인 반응성 자연언어 처리 능력을 토대로 제작된 표준 대사가 주어졌다. 유출 사건이 이 디지털 노동력을 폭로하기 전까지 이를 눈치챈 사용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사이보그는 총애 받는 복잡하고 못생긴 의붓 자매로, 모더니스트 기술 프로젝트의 핵심에 있는 남/여, 자연/문화, 공적/사적, 동물/기계, 주인/노예 등과 같은 모든 문제적 이원성을 호출한다. 1985년 “사이보그 선언”에 등장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포스트 모던”14했던 사이보그는 “소음을 강조하고 오염을 옹호하며, 동물과 기계의 비합법적 통합에 환호하는” 퀴어적이고 “오염된” 정치를 기도한다.15 하지만 이 기묘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분열된 우리 자신을 결합시키는 이원성을 이완시켜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은유적인 해러웨이적 사이보그는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Simians, Cyborgs, and Women: The Reinvention of Nature)」에 수록된 린 랜돌프(Lynn Randolph)의 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무속적인 호랑이 머리장식을 쓰고 코브라 자세로 키보드 앞에서 미소 짓는 스핑크스(“우주, 단어, 게임, 이미지, 무한한 교류와 활동을 가지고 놀 준비가 된 그녀의 손”16)의 몸은 하나의 회로판이다. 은하수, 수학 공식, 틱택토(tic-tac-toe) 게임이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창공 속에서 부유하며 소용돌이 친다. 한 부분은 여자, 한 부분은 기계, 한 부분은 동물. (또 다른 분할).

이 모든 게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디지털 생활은 끊임없는 폭력의 가능성에 시달린다. 내 친구도 아마 트위터 유저 ‘@So_Radhikal’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So_Radhikal’은 18세에 강간당한 후 느낀 죄의식과 혼란을 노골적인 장문의 트위터 메시지로 공유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17 이 때문에 그녀는 헤픈 여자, “강간에 대한 환상이 있는 여자”, “테러리스트”, 혹은 스톡홀름 신드롬 환자 등 각종 언어 폭력의 표적이 됐다.18 그녀의 폭로에는 걱정과 안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공공 장소, 법원의 견책, 폭력에 자신을 노출시켰다는 점, 그리고 수백만 명의 젊은이(다수가 퀴어, 여성, 젠더벤딩(gender-bending)으로 분류됨)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러한 경계는 대부분의 경우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본인의 사진이 결국 잘못된 곳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나의 친구도 다를 바 없다. 그 남자가 고의로 그녀의 사진을 공유할 수 있고, 자칫하면 해킹을 당할 수도 있다.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에서 삭제된 파일은 사실 계속 저장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오류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스크린샷, thispersondoesnotexist.com, 2020년 4월 30일 오후 2시 1분

폭력과 조작으로부터의 자유가 SNS 플랫폼 소유자, 혹은 법에 의해 주어질리 없다. 여성과 퀴어들은 절대 인터넷 자유의 수혜자로 상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보안 행위는 개인의 외부성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안전에 대한 책임은 ‘항상’ 나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고장 난 것을 인터넷이 고칠 수는 없다. 도리어 인터넷은 그것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의도한대로 정확히 작동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나: “네가 인터넷에서 헤픈 여자로 몰릴 때 이런 이론이 널 지켜 주길 바라. 조심해!”
그녀: “우리를 관리하고 싶어하는 것 따위한테 어떻게 자유를 설명하겠어?”

니샨트 샤는 우리가 스스로를 헤픈 여자, 플래시 드라이브, 플러그 장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주장한다. 결국 항상 은밀히 순환하며 네트워크를 스쳐 지나갈 뿐 어디에도 도달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19 웨헬리예는 법과 국가의 통제 아래 있는 시민으로서의 몸을 해체하고 우리를 육체로 회귀시켰다. 이때 그는 실제 생물학적 몸이 아니라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고 포획, 박탈, 타락의 흔적을 지닌 (나아가 이러한 유산들을 통해 인류의 미래 세대를 탄생시켜야 하는) 개념적이고 현세적인 몸을 말한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운동가들은 “데이터가 몸이고, 몸이 데이터”라고 주장한다.”20 그들은 폭력 등 온라인 상의 사건이 오프라인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법과 정책(대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음)에 의거하고자 한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들은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또 다른 곳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이는 사적인 데이터를 모으고 저장함으로써 플랫폼 기업들이 취하는 이익과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가 어쩔 도리 없이 “우리가 누구인가”와 얽히면서 우리가 취한 행위에 대한 온/오프라인의 구분은 빠르게 특정 시간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안과 밖,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논리는 아샤 아추탄이 말한 “아포리아(aporia)”에 우리를 가두게 될 것이다.21 아포리아는 여성 신체의 생물학적 한계의 유한성과 이에 대한 기술의 목적 사이에서 그 문이 열린다. 우리가 속한 적 없고 처음부터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되돌려지는 현상의 예로 “여성 인터넷 훈련 프로그램”, 그리고 “인공지능 업계 상위 여성 100인” 목록을 들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원래부터 감정과잉에, 엉망진창이고, 범주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성적으로 문란하다면?22 나는 우리의 열망이 기계 인식, 법과 관습, 다양성 쿼터, 그리고 각종 수상 제도를 넘어서야 하고, 이러한 요소에 국한돼도 안 되고 연계돼도 안 된다고 믿는다. 페미니즘에 기반한 물질적 실천과 거부의 표현 구사 방식 등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시사한다.

“말하는 것은 유출하는 것이다”라고 사라 아메드는 말했다. 그리고 모든 유출(피, 소변, 땀, 또는 데이터)은 수치스럽다. 브라질의 페미니스트 집단 코딩 라이츠는 수치심을 조성하는 이 기계의 행동 유도성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우리가 당당하고 섹시하게 유출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인터넷에서 진행되는 각종 의사소통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으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섹시한 누드 사진을 보낼지 배워라.”23

스크린샷, whichfaceisreal.com, 2020년 4월 30일 오후 2시 2분

페미니스트 인터넷 기술 서비스 제공자 집단인 베데타스와 케피르의 회원 난다(Nanda)와 나데쥬(Nadège)가 저술한 “날것의 선언(raw manifesto)”을 살펴보면, 이들이 느림, 중단, 불충분한 공간, 조준된 이용불가능성 등을 활용해 어떻게 인터넷의 기업적, 소유자적 통제를 탈취하고자 하는지 논한다. 신체의 한계를 인터넷이 약속한 무한한 기능성과 대립시킴으로써, 이들은 인터넷의 기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반하는 논리를 소개한다. “우리는 분투하고 기술을 그 근본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서 피부와 조상으로 회귀하고, 우리가 느끼도록 하고 움직이게끔 하고 또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으로 회귀하고, 의미 있고 중요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지속적이면서 서로를 연결시키는 행동을 함으로써, 기술, 즉 디지털 기술과 접촉하지 않는 이들에게로 회귀해야 한다.”24 이와 유사하게 “매니페스트-노”는 빅 데이터의 총체화된 힘에 대항하고, 이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서 재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거부와 헌신이 또한 요구하는 바는, 데이터가 일단 그 자체로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데이터는 우리가 만들어내 사용하는 하나의 사물이자, 과정이자, 관계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25

인도 전역과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 여성들은 자유롭게, 대부분 익명으로, 그들이 직장과 학문, 예술 현장에서 마주한 학대 남성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이렇듯 인터넷을 통한 호소는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지해야 한다고 믿는 페미니스트를 포함, 많은 보수 논평자의 분노를 샀다. 목록을 작성했던 여성들의 주장에 의하면, 애초에 여성이 당한 폭력 피해를 신고하도록 장려하는 법 기관의 지원이 없었다. 미투 운동은 명확한 의도에 따라 작동하는 인터넷이다. 

내 친구가 말한다. “인터넷이 아니라 바로 내가 전정(vestibule)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새로운 기준(new normal)이야.” 

엘리자베스 그로즈(Elizabeth Grosz)는 육신을 “전정 상처(vestibular gash)”라 칭한다.”26 전정은 출입구, 진입구, 공동, 문간방, 또는 기차의 한 칸에서 다음 칸으로 갈 때 건너야 하는 흔들리고 불안정한 통로다. 의학에서 전정은 뼈로 된 미로 같은 귓속의 중심 부분으로,27 중력과 속력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능을 한다. 이 전정 기관에 어떤 영향이 가해지면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을 느끼고, 균형을 잃는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장치이자 한 명의 인간이며, 이 둘은 나란히 자리한다. 그렇다. (앞서 언급한 수송선과 대농장에 있는 그 모든 신체와 같이) 우리는 비인간화되지만, 그럼에도 욕망, 신뢰, 우정, 안전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빠져 들어가는 텅 빈 공간이기도 하다. 가벼운 나체주의자인 나의 친구, 노골적인 트위터리언 ‘@So_Radhikal’, 라틴계 인프라 운동가, 모든 불복종적 페미니스트는 부정적이고 불안정하며 고도로 예민한 전정에 살고 있을 것이다. 변형이 가능하다고 여기면서. 

하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친구에게 묻고 싶다. 그녀에게 찾아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그것은 앨런 튜링(Alan Turing)이 그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기계를 감지할 수 있는지, 또는 기계가 인간으로 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인간들 사이의 궁극적 불가지(不可知)에 대한 것. 우리의 블랙박스 인풋을 바탕으로 아웃풋을 판단한다는 것.28 내 친구의 답변에 따르면, 최악이란 우리 모두가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용기란 나의 부정한 육체, 나의 데이터 육체, 그리고 이 육체의 “슬픔의 노래, 매끈한 결함, 미세한 움직임, 희망의 파편, 음식 조각, 가로막힌 자유의 꿈”29을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

1N. 캐서린 헤일, 『How we Became Posthuman: Virtual bodies in Cybernetics, Literature, and Informatic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ixx.

2‘몰카 에피데믹’은 서울 전역의 가정집, 공중화장실, 탈의실 및 기타 공공장소에 몰래 설치된 카메라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현상을 일컫는다. 이렇게 촬영된 사진 및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것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나의 삶은 당신을 위한 포르노가 아니다”)가 있었다. http://edition.cnn.com/2018/09/06/asia/south-korea-spy-cams-toilet-intl/index.html

3인간의 신체가 생물 군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소개한 토비아스 리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8/mar/26/the-human-microbiome-why-our-microbes-could-be-key-to-our-health.

4‘제너레이티드 포토스(https://generated.photos/)’ 와 ‘로즈버드 AI(https://www.rosebud.ai/)’는 온라인에서 찾은 얼굴 사진을 사용해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훈련시켜 합성한 가상 얼굴을 만든다. ‘제너레이티드 포토스’는 드랍다운 메뉴의 여러 선택지를 통해 고객에게 더욱 다양한 스톡 이미지를 제공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가상 얼굴에 어울리는 인조 몸을 제공할 것이다. 잠재적인 허위 정보의 폭발을 차치하고라도, 실제 자본은 신자유주의적, 형식적 다양성을 차지한다.

5존 페리 발로우, 「Declaration of the Independence of Cyberspace」, https://www.eff.org/cyberspace-independence.

6최근의 예로 캐롤라인 신더스와 코뮤지 랩(Comuzi Labs)의 ‘케어 봇(CAre B0t)’을 들 수 있다. 케어 봇은 SNS상의 괴롭힘에 반응한다. 또한 ‘워봇(Woebot)’과 같이 우울증에 대응하는 봇과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흥미롭게도 케어 봇은 자신이 봇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명확히 밝힌다. (https://care-bot.schloss-post.com/)

7사라 아메드, 「Wiggle Room」, 『feministkilljoys blog』, 2014/09/28, https://feministkilljoys.com/2014/09/28/wiggle-room/.

8알렉산더 웨헬리예, 『Habeas Viscu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4.

9코도 에슌, 「Further Considerations on Afrofuturism」, 『CR: The New Centennial Review』, (vol. 3, no. 2), 2003, pp. 287–302.

10라몬 아마로, 「As if」, 『e-flux architecture』, 2019/02/14, https://www.e-flux.com/architecture/becoming-digital/248073/as-if/.

112018년 ‘지식 문화 테크놀로지 컨퍼런스 (Leuphana University, 2018/09/19~22)’에서 필경사 바틀비 이야기를 재구성한 카라 킬링의 기조발제문을 참고했다. https://one.digitalculturesconference.org/.

12추가 정보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메이 퐁 저술, 「Sex Dolls Are Replacing China’s Missing Women」, 『Foreign Policy』, 2017/09/28.

13사라 샤르마, 「Feminism of the Broken Machine」, 『Studium Generale Rietveld Academie』, 2019/05/14, https://www.youtube.com/watch?v=f0A1lydIUlA.

14소피 루이스, 「Cthulhu plays no role for me」, 『Viewpoint Mag』, 2017, https://www.viewpointmag.com/2017/05/08/cthulhu-plays-no-role-for-me/.

15도나 해러웨이, 「A Cyborg Manifesto: Science, Technology, and Socialist Feminism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Manifestly Haraway』, (Minneapolis/Lond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6, p.57.

16린 랜돌프와 도나 해러웨이 간의 협업에 관한 추가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companionrandolph.blogspot.com/2010/11/modest-witnesses-painters-collaboration.html.

17https://twitter.com/so_radhikal/status/1215298768251211776

18https://twitter.com/so_radhikal/status/1215489624627281920

19니산트 샤, 「Sluts ‘r’ us: Intersections of gender, protocol and agency in the digital age」, 『First Monday』, (vol. 20, no. 4–6), 2015, https://firstmonday.org/ojs/index.php/fm/article/view/5463/4415.

20https://twitter.com/DataGovNetwork/status/1199187769764929536.

21아샤 아추탄, 니샨트 샤, 「Sluts ‘r’ us」.

22웬디 천, 새라 프라이들랜드, 「Habits of Leaking: Of Sluts and Network Cards」, 『d i f f e r e n c e s : A Journal of Feminist Cultural Studies』, (vol. 26, no. 2), 2015.

23https://www.codingrights.org/4/

24난다와 나데쥬, 「# From steel to skin」, https://fermentos.kefir.red/english/aco-pele/.

25M 사이포,  P 가르시아, T.L 코완, J 라울트, T 서덜랜드, A 챈,  J 로드, A.L호프먼, N 살레히, L 나카무라, 「Feminist Data Manifest-No」, 2019, https://www.manifestno.com/.

26엘리자베스 그로즈, 알렉산더 웨헬리예, 「Bare Life」, 『Habeas Viscus』, 2014.

27https://en.wikipedia.org/wiki/Vestibule_of_the_ear

28AI와 계산법과 관련해 알란 튜링의 업적에 대해 조언을 제공한 다니엘 루크에게 감사를 표한다.

29제임스 존슨,「Being and Becoming Human」: 알렉산더 웨헬리예, 「Radical Emancipation Theory and the Flesh and Body of Black Studies」, 『Earlham Historical Journal』 , (vol. 9, no. 2), 2017년 봄 호, p.52.

BIO

마야 인디라 가네쉬는 기술, 문화, 사회 전반을 다루는 연구자로, 특히 빅데이터 정책, 디지털 보안 및 사생활 보호, 인공지능 및 자율 시스템 등의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도 및 유럽 전역의 여러 문화 기관, 학술 기관, 시민 단체와 협업한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지능적’, ‘자율적’이라고 여겨지는 각종 기계장치의 사회적, 문화적 측면, 그리고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집중 탐구했다. 이에 앞서, 그는 십여 년간 디지털 운동의 일환으로 시각 매체와 인터넷 분야에서 정보 공유 활동가로 일했으며, 더불어 인권 보호 활동가들이 온라인상에서 사생활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경험은 온라인상의 각종 괴롭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보안 및 사생활 보호 이슈에 관해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예술, 문학, 영화를 섭렵하고 그 지식을 자양분 삼아 현재 그는 디지털 기술을 접하는 데에 따르는 정서적, 정치적 경험에 관한 논픽션을 저술하고 있다. 그는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이 웹사이트를 참조 바란다. bodyofwor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