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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접속, 신분, 갈망: 북한에서 가상의 존재 및 부재에 대한 고찰

By 트래비스 제퍼슨

2017년 봄 마지막으로 (그리고 어쩌면 최종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그 끝이 임박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실 그 해 가을에 또 한 번 방북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온 직후, 나의 여권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의회가 자국민의 북한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5년에 걸쳐 다섯 번 북한을 드나들었고 마지막 방북 이후에는 미련 가득한 후회, 혼란, 놀라움, 모호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끊임없이 그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면서 놀라우면서도 불가피한 몇몇 깨달음도 얻었다.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은 한 가지 기억은 20대 중반 여성 북한 안내원 두 명이 또래의 남한 젊은 세대처럼 휴대폰에 중독돼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 2017년 5월 21일. 사진: 트래비스 제퍼슨(Travis Jeppesen)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방북 경험의 일부였던 온라인 세계와의 단절을 늘 고대했다. 2012년 처음 북한을 찾았을 때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나의 안내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평양 시민이 휴대폰을 항상 소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휴대폰은 북한의 신흥 중산층이 탐내는 ‘신분 물건’이었지만 외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극히 제한된 용도로 쓰였다. 우선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했다. 남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선 인터넷 연결을 자랑하는 반면, 소수의 정부 고위직 엘리트 계층을 제외한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국제전화도 불가능했다. 초기 휴대폰이 거의 오롯이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데 사용됐다면, 그 다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셀카나 사진을 찍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정된 분량의 오락, 뉴스, 정보, 교육용 자료, 채팅 및 프로파간다가 제공되는 인트라넷에 이따금 접속하기도 했다.1

처음 북한에 도착했을 때 외국인 관광객들은 입국 시 공항에서 휴대폰을 안내원에게 넘겨주고 출국 시 돌려받았다. 하지만 2013년 고려링크 통신사가 북한에서 거주, 근무 또는 방문 중인 외국인이 휴대폰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정책이 바뀌었다. 유심칩(SIM)에 장착된 새로운 기술은 외국인이 북한 국내 번호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낼 수 없게 제한했다. 즉, 북한 내 다른 외국인 또는 국제 전화번호와의 통신만 가능했고 이는 북한 정권이 유지하고자 하는 대중과 외세 간의 엄격한 분리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이 유심칩 이용자는 부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무선 인터넷의 경우 지역에 따라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개인적으로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나는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안내원의 감시하에 항상 단체로 이동해야 했기에 북한 내에서 다른 외국인에게 전화를 걸 확률은 매우 낮았다. 외국 대사관이나 구호단체에 연락을 취하고 싶어도 개인적으로 아는 곳이 없었기에 휴대폰은 실상 내게 무용지물이었다. 더구나 나는 외부와의 연결을 원치 않았다.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려는 궁극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북한이라는 국가의 국제적 고립상황에 대한 관심도 높았기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든 연결을 차단했다.

평양 시내의 한 초등학교, 2017년 5월 22일. 사진: 트래비스 제퍼슨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알렉상드르의 아리랑 스마트폰 구입 작전에 동원돼 나머지 시간을 다 써버렸다. 알렉상드르는 북한 여행광의 기념품 중의 하나인 아리랑 폰을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지만 지난번 방문했을 때 구입하지 못했다.

— 트레비스 제퍼슨 지음, 최은경 옮김, 『시-유 어게인 in 평양』(메디치미디어, 2019), p.165.

 “아무래도 이제 외국인들이 현지 앱을 사용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아.” 알렉이 말했다. “거기에 사전도 포함된 것 같은데.”
알렉상드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다른 외국인과 통화하는 용도겠지, 아마도.”
“그거 알아?” 알렉상드르가 분통을 터뜨리면 속삭였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조선말을 배우길 원하지 않는 거야. 외국인이 사전 쓰는 걸 막는 이유가 뭐 있겠어? 우리가 모르면 모를수록 그들에겐 이득인 거야.”
민이 어느새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커피 다 드셨습니까? 갑시다!”
“지금 어디로 갑니까?”
그녀가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앱을 구해주려고요.”
— p.181.

이렇듯 단절된 상태에 순응하며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국가의 현실에 몰두하던 나의 눈에 포착된 건 평양에 있는 제한적 버전의 가상에 접속하며 점차 이 세계와 멀어지고 있는 나의 안내원들이었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북한 버전의 스마트폰, 스마트 TV 및 태블릿 같이 새로운 기기의 출현이 눈에 띄었다. 외부인이 보기에 이처럼 현지에 특화된 전자기기가 북한 주민에게 제공하는 가능성보다는 그 한계가 더 도드라졌다. 특히 스마트 TV의 경우, 북한에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영상 콘텐츠의 질이 형편없이 낮고 서너 개의 방송사만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쳐진 선전 영화, 뉴스 및 지도층을 칭송하는 프로파간다를 제공한다. 김정은이 집권한 뒤 선택의 폭이 다소 넓어져 드라마나 국내 관광을 촉진하는 여행 프로그램 등이 추가됐다. 하지만 모두가 이미 너무도 익숙하고 따분하게 느끼는 북한 콘텐츠 외에 다른 어떤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 2016년 7월 28일. 사진: 트래비스 제퍼슨

그렇다. 그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바보라도 다 알고 있다. 이 시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외국 미디어, 그 때문에 전국의 영화관에 사실상 관객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USB, SD 카드에 저장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요즘은 인기가 약간 시들해진 암시장에서 산 DVD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평양 중구역의 승리거리에 있는 그 유명한 대동문영화관도 이번 달에는 인도 영화를 상영한다. 옛날에는 최신 영화를 상영할 때면 영화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오락거리와 영화를 간절히 원했다. 아무리 투박한 선전으로 점철된 영화일지라도 최소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북한에서 제작하는 영화를 찾는 관객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상황이 아니면 이런 영화를 볼 일은 없다.
— pp.393–394.

1990년대 북한 대기근 이후 급부상한 비공식 계층구조 내에서 이러한 디지털 기기는 외부와 특별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도구라기보다 페티시(fetish)의 대상이다.

북한 연구자들은 평양의 삶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고 재차 이야기한다. 즉 ‘진열장 수도’인 평양의 주민은 모두 특권층에 속하는 반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짐작하건대 끝없는 노역과 결핍에 시달리는 삶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관한 여타의 많은 주장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북한의 모든 주요 도시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디지털 기기(비록 앞서 말한 대로 제한적이긴 하지만)를 사용하는 중산층이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또한 평양이 최신 디지털 기술의 본거지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영광은 이러한 물건을 더욱 수월하게 밀수하고 많은 부(富)가 숨겨져 있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 지대에게 돌아간다. 중국 상인과 자주 교류할 뿐만 아니라 종종 중국을 오가기도 하는 국경 지역 주민과는 달리, 보통의 평양 시민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접하지 못한다. 지하 정보 경제에서 외부 세상의 뉴스는 대게 국경 지역을 통해 새어 들어오며 며칠 혹은 몇 주 후에 평양에 도착하거나 전혀 전달되지 못한다. 

평양 냉면, 2017년 5월 23일. 사진: 트래비스 제퍼슨

국경 지역 주민들은 또 다른 의미로 강한 연결성을 누린다. 종종 중국 통신사 송수신탑에서 보내는 신호를 잡아 해외에 전화를 걸 수 있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의 기자 강미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북한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진취적인 상인들이 지역 주민에게 중국 핸드폰을 임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국경 너머의 중국 상인과 거래하거나 월남한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자 한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기술을 동원해 빈번히 단속을 실시한다. 적발되면 엄벌에 처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뇌물을 바치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은주가 열여섯 살 때, 친한 친구 중 하나가 그녀를 밀고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친구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보위부는 수색 끝에 남한 가요 CD를 몇 장을 발견했고, 그녀는 교화소에 갇혔다. 은주는 거의 매일 밤 계호원(간수)에게 구타를 당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잔인하고 가혹한 구타로 인해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다. 하지만 적어도 은주는 밤마다 어딘가로 끌려가서 강간을 당하던 자신의 감방 동료와 같은 운명은 피할 수 있었다. 은주의 말에 따르면 그 동료는 좀비처럼 변해갔다. 낮에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면서 꼼짝도 하지 않거나,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 p.357

평양 려명거리, 2017년 5월 31일. 사진: 트래비스 제퍼슨

이러한 기기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국가 감시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더욱 공고히 한다. 이는 이웃 국가인 중국, 그리고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의 폭로를 상기하면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마트 TV,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 등 USB 포트가 있는 기기는 불법 해외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 암시장에서 외국 콘텐츠가 플래시 드라이브의 형태로 밀거래 되고 있다.

결국 디지털 기기가 신분의 상징, 특권의 과시로 체계화된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나아가 ‘특권’ 자체가 맹목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금기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젊은 층, 특히 불법 미디어를 비밀리에 소비할 가능성이 높은 10대 청소년 및 대학생 사이에서는 디지털 기기에 부여된 지역적 기호학이 이러한 그릇된 추론을 야기하며 북한 기호 자본주의(semiocapitalism)의 숨겨진 시학(詩學)의 한 층을 드러낸다. 이러한 기기를 소지 및 소유한다는 것은 부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38선 이남으로의 잠재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의미에서는 금지 됐기 때문에 더 간절히 열망하는 외부 세상과 통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12002년 11월 처음으로 휴대폰이 북한에 도입된 후, 이듬해까지 약 2만 명의 북한 주민이 휴대폰을 취득하였다. 북한 정권이 선호하는 ‘2보 전진 3호 후퇴’ 접근 방식(이에 수반되는 불가측성은 다른 곳에서 ‘진전’이라 간주되는 것으로 향하는 노력에 있어 시민들을 항상 불확실하고 가벼운 공황적 상태에 놓이게 한다)에 맞게 北 정부는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2008년 말, ‘고려링크’라는 새로운 통신사가 평양에서 출범하였다. 이집트 기업 오라스콤(Orascom)과의 합작 하에 운영된 고려링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2017년까지 북한 전체 가구의 69%가 적어도 한 대의 휴대폰을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BIO

트래비스 제퍼슨(Travis Jeppesen)의 주요 저서로는 『희생자들(Victims)』(INTA PRESS, 2003), 『문밖의 늑대(Wolf at the Door)』(Twisted Spoon Press, 2007), 『자살자들(The Suiciders)』(Semiotext(e), 2013), 『모두 추락한다(All Fall)』(Publication Studio, 2014), 『시 유 어게인 in 평양(See You Again in Pyongyang)』(메디치미디어, 2019), 『배드 라이팅(Bad Writing)』(Sternberg Press, 2019) 등이 있다. 오브제 지향적 글쓰기를 창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오브제의 내적 삶에 접속하려 시도하는 체화로서의 글쓰기라는 형이상학적 방법론이다. 그의 첫 번째 오브제 지향적 글쓰기 프로젝트인 〈16개의 조각 작품(16 Sculptures)〉은 출판사 퍼블리케이션 스튜디오가 책의 형태로 출판했으며, 2014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전시됐고, 런던 윌킨슨 갤러리(Wilkinson Gallery)에 개인전으로 구현됐다. 2013년 크리에이티브 캐피탈(Creative Capital), 워홀 파운데이션(Warhol Foundation)이 주관하는 ‘미술 저술가 기금(Arts Writers Grant)’을 수여 받았다. 미술가로도 활동하며 주요 개인전을 베를린의 엑사일(Exile), 빌뉴스의 루퍼트(Rupert)에서 개최했다. 현재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으며 상하이 교통대학교(Jiatong University) 문화창조사업 인스티튜트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