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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의 무신도와 무속인

By 로렐 켄덜

눈부신 색상과 오래된 옷, 공식 의례용 예복, 전사의 갑옷, 실크 치마와 상의 복장 등을 걸치고 있다. 과장되게 부릅뜬 눈으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본다. 이러한 무신도를 그린 화가들은 오만한 관료, 의욕 넘치는 전사, 부드럽게 웃는 노인, 아름다운 여인, 장터의 여성, 주막의 거무스름한 남자 등 최소한의 선으로 한국인의 얼굴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그 중 일부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만화처럼 개성과 사연이 부여됐다. 이렇게 만신(萬神)은 개성과 사연을 가진 신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드러낸다. 만신의 가장 정교한 의식인 굿에서는 신들이 이 그림들에 표현된 것처럼 밝은 의상을 입고 순서대로 나타난다. 복장을 갖춘 이 만신의 신체를 통해, 이 무녀의 춤, 노래, 모사, 열변을 통해 신들이 움직이고 명료하게 표현된다. 수많은 가족사에 담긴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신들의 권위를 빌은 만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혼쭐내고, 연민하고, 외설적인 농을 던지고, 끔찍한 협박은 물론 곧 쏟아질 복에 대한 이야기까지 휘몰아친다.

이미지 1: 여산신, 종이에 채색, 88 × 65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 그림들을 박물관 벽에서 떼어낸다고 상상해 보자. 정교한 성합이 유럽 곳곳의 박물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 계속 성당에 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같이, 무신도 역시 박물관에 걸어 놓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그림들, 이 신들은 어느 좁은 방 안 가물거리는 촛불과 향이 솟아오르는 제단 위에 다닥다닥 모인 채 올려진 모습으로 상상해야 한다. 만신의 사당은 평범하지 않다. 일상과 분리된 선명한 색채감의 공간이자 그림 속 신들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신은 매일 해야 할 일에 대한 명확한 신접을 요청하면서 주문을 외운다. 그림을 통해 또 그림 안의 신을 통해 오는 신접, ‘맑은 기운’을 뜻하는 명기(明氣)의 흐름을 따라 만신은 굿판을 벌인다. 그녀는 명기를 받아 말과 행동으로 신들을 현현케 하고, 천복을 받는 길을 트고, 그 여정에 불결하고 불길한 것들을 쫓아낸다. 이 때 만신은 불길한 것들에게 명령하거나 환상을 보는 즉시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만신의 역할은 역동적이다. 그녀의 신들은 장사가 변변치 않은 식당, 카드 빚이 있는 아이, 변덕스러운 배우자 문제를 해결한다. 신들은 오래된 전통 옷을 입고 오지만 현생 무속인의 몸을 빌려 21 세기의 순간을 맞이한다.

굿판에서 죽은 자(조상뿐만 아니라 배우자, 형제 자매, 자녀 등)가 나타날 때 만신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만남은 기억을 활성 상태로 전환함으로써 슬픔을 제거하고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죽은 영혼을, 특히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지거나, 잔인하게 죽거나, 한을 품고 이승을 떠난 영혼을 달랠 때 가장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만신의 의식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투쟁의 지속적인 유산인 정치극의 강력한 매개체가 됐다. 만신과 만신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학살 당한 광주 시민들, 민주주의와 노동권 투쟁의 순교자들, 일본 제국군의 성 노예로 징집된 위안부들, 불법으로 과적된 배에 올라 익사할 때까지 남겨진 학생들 등 불안정한 한국 근현대사의 희생자들을 호명한다.

다른 곳에서 ‘무속인’이라고 불리우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만신이 되는 것은 비자발적인 부름으로 시작된다. 예비 만신은 기이한 질병과 불행, 생생하고 불안한 꿈과 광기에 시달린다. 신내린 사람, 즉 신의 계승자와 가족은 보통 과거에 버림받은 직종으로 여겨졌던 이 험난한 길에 오르는 데 거부감을 표한다. 일단 시작되면 초보 만신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착취에 가까운 견습을 통해 복잡한 신들과 주술, 복채, 의식을 배우고 신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만신은 영매도, 단순한 행위인도 아니다. 만신은 영매처럼 일대일 소유로 신의 기운을 얻지 않는다. 신성한 존재로 채워질 그릇도 아니고, 무형의 손길에 휘둘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도 아니다. 만신은 때때로 자신의 신체가 너무 강력하게 점령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고 말한다고 주장한다. 입문자들은 자신의 몸주(무속인이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점지한 신)와의 강한 연결점을 증명하는 비범하고 신성한 말들이 어떻게 터져 나왔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매일 만신 일을 하고 굿판을 수시로 벌이려면 굿판을 벌이는 방법에 관한 훈련되고 숙련된 지식이 필요하다. 만신의 관점에서 이는 기대치에 부응하는 적절한 연극을 습득하는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접의 작업으로서 더 심오하게 신들과 조상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말과 몸짓으로 정확하게 번역해 무객(巫客)이 이들을 역동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소통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조화를 재협상한다. 인류학자의 관점에 따르면, 만신이 충분히 숙련되고 신들의 기운을 받을 때 내담자는 감정적으로 만족스러운 의식 과정을 경험한다. 메시지가 강하든 약하든 만신은 굿을 하는 동안 무객에게 신의 의도를 전달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만신과 무객은 모두 화난 신들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만신은 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명기를 재충전하지만, 마치 만신과 신들의 사이를 오가듯 기운 또한 왕래할 수 있다. 만신은 매일 그녀의 신들을 불러내 신당에 있는 그림들 앞에 제물을 바치고 고객을 위해 작은 의식을 하고 때로는 굿을 벌이기도 한다. 신당을 떠나 다른 곳에서 굿판을 벌일 때 만신은 신들의 그림 앞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해도의 전통을 이어가는 만신은 그림 안의 신을 접어 굿판으로 가져 가기 때문에 황해 만신이 사용했던 그림에는 구겨진 자국이 있다.

신접은 그림을 통해 만신에게 도달하는데, 높은 산기슭의 신성한 장소에 집중된 신성한 기운을 만날 때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만신은 이 기운을 신당과 그녀의 제단 위의 그림으로 되돌려 보내 (실제 그들이 사용하는 비유를 빌려 표현하자면) 자신의 배터리를 재충전한다. 신들에게 사랑받는 만신은 분명하고 강한 신접을 받는다. 효과적인 굿판을 벌이고 기민한 점괘를 주는 만신은 강력한 신들의 은총을 받아 능력치가 높은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무객이 찾아오고 이에 따라 그녀는 더 풍족한 신당, 새로운 의상, 풍성한 제물로 감사를 표한다. 아름다운 신당은 만신과 그녀가 섬기는 신들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관계를 증명한다. 만신은 불순한 행동이나 의도하지 않은 의식 실수로 신을 언짢게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신접이 막히면서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투덜거리거나 울음 소리만 들을 수 있고 환상이나 다른 직관적 신호가 부족할 수 있다. 그녀는 신들이 불만을 품은 근원을 파악하고 바로 잡을 때까지 다른 불행, 갑작스런 사업 중단, 또는 잔소리를 경험한다. 극한 상태에서는 화난 신들이 떠나 버려 빈 그림과 침묵을 남기기도 한다. 어떤 그림은 결코 거주하는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신들이 자신의 만신을 선호하지 않거나 신들 자신이 약한 경우 입문 의식은 실패하고 만다.

이미지 2: 대신 마누라, 비단에 채색, 83 × 51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미지 3: 대신 마누라, 비단에 채색, 92 × 52 cm, 가회박물관 제공

만신이 신내림 굿 중 이미 환상, 꿈, 다른 영감을 통해 보았던 신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때 비로소 그림 속의 신들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로 투과되는 신들은 결국 지역화되고 개인화된 ‘그녀들’인 셈이다. 그림의 많은 형태가 표준화됐지만 ‘산신’, ‘무신’, ‘대신(大神) 마누라’와 같은 유형으로 식별되는데 신당에 내걸린 그림은 특정 신과 만신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서울과 근교의 거의 모든 무당집에서 볼 수 있는 ‘대신 마누라’나 ‘대신 할머니’(이미지 2, 3)를 예로 들자면 이는 만신의 조상 신이며 점괘를 돕고 죽은 자를 굿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이미지 2는 아마도 20세기 후반부터 그려진 상업 작업실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1 청록색 배경 앞에 노란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고 점괘 상 뒤에 앉아 포즈를 취한 계란형 얼굴의 무속인은 기술과 구도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익숙한 이미지로 재현됐다. 가난한 만신은 상업용 컬러 프린트로 복사한 거의 동일한 이미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이미지 3은 다른 화가의 작품인데 매력적인 단순한 선으로 상 뒤에 쪼그려 있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을 그려내고 여성의 얼굴 및 장신구에 변화를 줬다. 이런 변형에도 불구하고 빨간 치마와 노란 저고리를 입고 만신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큰 부채와 황동 방울을 들고있는 두 이미지는 명백하게 ‘대신 마누라’다. 이미지는 표준화 됐지만 만신에게 그녀의 ‘대신 할머니’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림을 통해 그녀와 함께 작헙하는 죽은 무속인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용수 어머니’라고 부르는 만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대신 할머니’는 돌아가신 외가 쪽 무속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 ‘용수 할머니’는 무속인의 운명을 가졌지만 입문한 적은 없다. 나는 그녀가 무아지경2에 빠지고 선조 무속인의 긴급한 전갈을 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죽은 후 딸의 성지에 ‘대신 할머니’로 등장한 것은 ‘용수 할머니’였는데, 그녀는 무속인의 운명과 전임자 사이의 특별한 인연으로 자격을 얻은 것으로 보였다. 딸의 굿판에 나타나서 그녀는 내게 “이리 보니까 좋구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했다.

이미지 4: 쌍둥이 성수 대신, 종이에 채색, 99 × 76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미지 5: 작두 대신, 종이에 채색, 100 × 71 cm, 가회박물관 제공

만신이 역량을 쌓아갈수록 사당의 신들 역시 많아지는 황해 전통에서 죽은 무속인은 다른 무속인, 주로 본인 견습생 사당의 성수가 된다. 이미지 4와 5는 이러한 종류의 신이다. 이미지 4에 등장하는 ‘쌍둥이 성수’는 황해 만신의 근사한 황실 복장, 붉은 두루마기,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다. 화가의 피사체는 다른 무신도에서 볼 수 있는 ‘왕’이 아닌 ‘왕의 모습을 나타내는 무속인’이다. 이 무속인은 본인 자체가 다층적인 신인 것이다. 쌍둥이는 마치 만신처럼 종과 부채를 들고 있고 굿판의 무당처럼 파란 한복 조끼와 긴 치마 위에 왕의 예복을 입고 있다. 이미지 5의 신 역시 갑옷을 입은 성수인데 한 손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다른 손에는 무당 종을 든 채 맨발로 작두타기를 한다. 굿판과 마찬가지로 두 명의 여성이 조수 역할을 하며 작두를 잡아주고 있다. 쌍둥이 얼굴이 상투적이라면 이 작두 타는 ‘도깨비 작두신’의 움푹 들어간 입술, 두드러진 눈썹, 땅딸막한 팔다리는 그림을 의뢰한 만신이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임을 암시한다.

이미지 6: 용신, 종이에 채색, 84 × 77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미지 7: 용태부인, 종이에 채색, 94 × 73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미지 8: 용신, 종이에 채색, 97 × 72 cm, 가회박물관 제공

만신은 신전에 걸려있는 무신도를 직접 그리지는 않지만 그 그림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주체다. 왕조 시대에 실패한 궁정 화가들은 아마도 오래된 신당에서 살아남은 희귀한 그림이나 기념 초상화를 회상하는 양질의 작품을 만들었을 테다. 다른 화가들은 서울 전통 승려였을 것이고 황해 전통 무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인이었을 텐데 오늘날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옛 자유형 그림은 공상가들과 만신이 직접 작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이는 추측일 뿐이다. 신은 장군, 왕, 공주, 여왕, 전사, 산신 등 광범위한 범주로 나타나지만 각 유형 내에서 큰 변형이 가능하다. 효과적인 그림을 얻기 위해서는 만신이 자신의 환영을 화가에게 전달하고 화가는 이를 시각화 및 재현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환영이 뚜렷하고 화가의 실력이 좋을수록 신은 사당에 더 단단히 거주하고 만신과 함께 일할 의향을 보인다. 이미지 6, 7, 8의 용녀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유형으로, 용녀와 두 명의 궁녀가 구름 배경에 물을 타고, 용의 등을 타고 올라가는 당당한 여성인데 하늘로 올라가면 환영의 비가 내린다. 이미지 6과 7은 거의 확실히 같은 화가나 같은 작업실에서 그려졌고, 이미지 8은 출처가 다를 것이다. 더 뻣뻣한 몸매, 격식 있는 예복, 비스듬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려진 얼굴, 더 예리한 선, 선녀와 같은 여왕의 머리 등을 보며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6과 7에서 보이는 거의 똑같은 인물을 다시 한 번 보면 이미지 6에서 여왕은 빨간 저고리와 녹색 치마를 입고 다른 하나는 양각 무늬가 있는 단색 의상을 입었다. 이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두 명의 만신이 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용녀를 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9: 호구마마, 비단에 채색, 85 × 58 cm, 가회박물관 제공

이미지 10: 제주 한라산 여장군, 종이에 채색, 98 × 73 cm, 가회박물관 제공

대부분(다 그렇진 않지만)의 만신은 여성이고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이들이 섬기는 대부분의 신은 남성이다. 여성이 무자비하고 불경한 신이 되거나 전사의 힘을 발휘할 때 기이한 변화가 일어난다. 반대로, 박수 만신 또는 남성 무당은 종종 나긋나긋하고 매우 여성스러운 신의 발현으로 유명해진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무당계에서도 서로 다르게 인지되고 있다. ‘대군 할머니’는 집안 여성 어르신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호구마마’(이미지 9)는 천연두나 홍역으로 죽고 이루지 못한 욕망에 이끌린 날렵한 처녀이기 때문에 위험한데 그녀는 가정 내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널리 복제된 ‘용신’ 대신 ‘용녀’처럼 만신은 일반적으로 남성으로 알려진 신을 여성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산신은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동행한 흰 수염의 노인으로 묘사되지만 일부 산에는 여성 산신이 기거한다. 이미지 1에서는 성숙한 보살의 모습을 한 여성 산신이 호랑이와 함께 편히 앉아 있다. 제주도 한라산의 단호한 여장군(이미지10)은 제주 여인들의 전설적인 힘을 짊어진 황해북도 무속인의 신들 가운데 나타났다.

무신도를 미술 작품으로 충분히 즐기되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강력한 무속 관행의 주체로도 기억하면 좋겠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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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런 작업실 작품들은 이제 떠돌이 조선족 화가의 손에 맡겨지고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2평범한 여성이 신들리면 만신이 신을 달래어 여성 본인의 모습을 되돌려 놓을 때까지 눈이 뒤집힌 상태로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간혹 팔을 휘젓는, 이 극히 드문 상태를 나는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한다. 만신이 굿을 벌이는 장면 자체를 ‘무아지경’이라고 일컫지 않는다.

BIO

로렐 켄달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 인류학 부서장이자 아시아 민족지학 컬렉션 담당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켄달은 한국의 종교, 특히 샤먼 전통 연구자이며, 특히 샤먼의 전통이 어떻게 젠더화되고 수행되는지를 전문적으로 연구 중이다. 해당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출간했으며, 양종승, 윤율수와 공저로 <The Ownership and Meaning of Shaman Paintings>(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5)를 발간했다. 최근 발간한 <Mediums and Magical Things: Statues, Paintings and Masks in Asian Places>(University of Hawai’i Press, 2021)는 현대 한국과 베트남, 미얀마, 발리, 인도네시아에서 이미지를 다루고 활용하는 샤먼과 영매들의 활동에서 있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내용이다. 이 연구서는 마술적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조작되고, 판매되고, 관리되고, 처리되며, 때로는 미술 시장의 상품이자 박물관 유물로 변하는지 다루고 있다. 켄달은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