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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초월과 내재: 불교적 상상력을 가로지르는 비인간 행위소와 모더니즘의 문제들

By 프란체스카 타로코

“사이보그가 초과의 하이브리드 존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부분의 합을 넘어서는 것.
그 힘을 연장하고, 개선하고, 초월해 버린 것.”
— 신선영, 『참을 수 없이 탁월한』, 2016.1

기술과 제의적 부활의 존재들 

2016년 베이징 소재 용천사는 방문객과 소통할 수 있는 소형 ‘로봇 스님 셴얼(贤二机器僧)’을 소개했다. 2017년 소프트뱅크는 불교식 장례를 치르는 승려 로봇 ‘페퍼(Pepper)’를 개발했다. 2019년 교토 소재 사찰 고다이지의 주지 스님이 로봇 ‘마인더(Mindar)’를 관음보살의 현시로서 사당에 안치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2 한국, 일본, 중국이 경쟁적으로 기술적 혁신을 이루는 가운데 몇몇 불교도들은 겉으로는 테크노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동시대 담론에 깊이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3 나는 동아시아 불교와 기술의 역사적, 현재적 상호 작용을 연구하면서 서구식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4 특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주론과 비인간 행위소 및 자동 장치의 재현 문제에 천착해 왔다. 이 낡은 “새로움”, 즉 모더니티를 구성한 새로움이 불러온 충격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어쩌면 애초에 그다지 새롭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언제나 불교적 삶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대수구다라니, 고려(12세기), 목판화, 32.3 × 34.8 cm, 보광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에 안치. 출처: 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동시대 불교 기술 문화는 과거부터 인간의 역량을 연장해 왔던 비인간 행위소(인공물, 해석학, 서체의 형태, 사회 기반 시설 등)의 자장 안에서 검토해야 한다. 기술은 ‘테크네(techne)’, 즉 우리를 상호 주관적으로 물질 세계와 연결해 주는 지식의 사용이기도 하다. 불교는 자동 장치 외에도 다른 강력한 비인간 행위소를 포함한다. 가령 탄트라(경전)의 ‘만트라’와 ‘다라니(陀羅尼, 기억술의 기도)’라는 주문(呪文)의 물질적 화신은 기술과 물질-시각 문화가 더욱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불교적 방편으로, 그 자체로 강력하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시각적, 독창적으로 비범한 도약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텍스트”를 반드시 글로 작성할 필요는 없었다. 빛, 신체, 여타 발산물로 변형되고, 구어적, 문어적 형태를 둘러싼 바람이나 물에 의해 침투되고, 다른 물질적 신체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적혀 있거나 놓여 있거나 암송되는 종이와 여타 사물에 강력하게 스며든다. 이처럼 효험이 있는 것을 탑, 사리 장치에 새기고, 맹세의 일부로 써넣고, 조각의 구멍에 넣고, 신을 그린 그림이나 부적에 그려 넣어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있다.5 서기 2-6세기에 중국 불교와 유교가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과거 왕조 국가들의 국경을 넘어 한반도와 일본 군도로 침투하면서, 산스크리트어의 풍부한 영향으로 흔히 불교범어(Buddhist Hybrid Chinese)라고도 하는 한문이 동아시아 전역의 성스러운 언어로 정착했다.

 

자동 장치 

자동 장치는 낡았다. 이 짧은 글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자동 장치에 대해 말하고, 사유하고, 상상하고, 재현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문화적 환경에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문화적 환경은 불교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미래와 공상과학의 상상력은 많은 경우 현대 과학 기술과 관련이 있지만, 시공간에 대한 전혀 다른 탐색과 우주론을 펼치는 고대와 중세 세계관에서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상상적 글쓰기가 존재한다. 중세 중국의 기적적인 이야기는 불상이 걷고, 말하고, 땀을 흘리고, 빛을 발하고, 고통을 느낀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살아있는 조각의 신체적 행위자성을 강조하는 중세의 기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불교 신자들은 조각에 생명을 부과하고, 이들이 자신만의 생명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강화해 왔다. 근대 이전에 제작된 조각품의 손은 머리 장식, 직물 장식과 더불어 대체로 따로 제작된 후 다른 연결 방식을 활용해 몸통에 부착됐다. 불상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의지는 중세 시대에 자동 장치의 제작으로 이어졌다.6 한국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신격 존재인 ‘관음’을 표현해 금박을 입힌 목조상은 연민의 보살이자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2020년 워싱턴 소재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일종의 자동 장치로서 전시됐다.7 얼굴과 땋은 머리는 각각 별도로 제작해 몸통에 부착한 것이다. 각 팔은 상단과 하단으로 구성됐고, 각 다리는 하나의 목재로 제작됐다. 철사 침을 활용해 몸의 각 기관을 고정하고 구부린 팔의 관절을 강화하고, 밖으로 뻗은 팔에 이어진 손 끝에는 길고 뾰족한 손톱을 붙였다. 생명을 불어 넣는 다양한 사물, 유적, 경전, 기타 효력 있는 물질을 몸체에 깃들게 하는 의식을 통해 이 불상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이다. 

한국 불교를 현대화한 한용운이 남긴 저술 중 가장 시사하는 바가 큰 글에서 그는 초기 중국에서 자동 기계를 발견함으로써 서구의 기술적 우월함을 바탕으로 하는 지배적인 주장을 전복하고자 했다. 그는 “동양인(東洋人)”이 일찍부터 자동화를 수월하게 생각해 왔다고 주장한다. 전국 시대, 후한 혹은 육조 시대에 쓰인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에 등장하고, 불교에서 연원했을 가능성이 큰 유명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한용운은 노래하고 춤추는 자동 기계가 불길하고 위험한 아일랜드의 ‘페치(fetch)’ 혹은 독일의 ‘도플갱어(Doppelgänger)’와는 달랐다고 말한다.8 한용운은 불교의 우주론과 근대적 문제를 엮어 자동 기계와 인간 사이에 존재론적 구분을 짓지 않는다. 영원한 “자아(self)” 없이 인간은 유일하거나 개별화된 존재가 아니라 업보의 조건과 결과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비인간 존재, 즉 동물이나 여타 지각이 있는 존재는 업보의 원칙의 복잡한 작동 방식에 따라 호환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모든 존재는 환생할 수 있으며, 다른 지각 있는 존재를 대하는 의도와 관계에 따라 특정한 형태로 환생한다.

한편, 초기 중세 유럽의 저술가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몸을 모방해 자율 이동 메커니즘에 대한 엉뚱한 꿈에 몰두했다. 자동 기계 중 동물이나 새, 인간을 닮은 것도 있었는데, 자연물보다 오히려 더 낫고 신나는 발명품이었다. 역사가 강민수는 이처럼 언캐니한 창조물이 기계로서의 인간에 대해 던지는 필수적인 질문을 파고든다. 『살아 있는 기계에 대한 숭고한 꿈: 유럽의 상상력에 등장하는 자동 기계』에서 강민수는 자동 기계를 “생기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과 같이 대체로 상반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범주의 구분을 허물어 버리는 결과 혹은 가능성을 사유했던 서구 문화의 개념적 도구”9라고 설명한다. 2011년으로 돌아가 보자면, 한국 작가 왕지원은 부처와 보살 형태의 전기 기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조관음보살좌상(덕수953) 기록 필름, 1910년대, 유리, 16.4 × 21.4 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인간성과 마술 

불교는 광범위한 교리를 지닌 정교한 종교이자 철학이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대승 불교는 초월성과 내재성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수의 대승 불교 승려는 지각이 있는 생명뿐만 아니라 지각이 없는 사물도 “부처의 속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마인더와 같은 로봇을 관음보살의 현신이라고 보는 불교 교리의 골조에서는 초월성과 내재성을 나누지 않는다. 대승 불교의 사상에서 신성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은 상호 침투적이다. 이처럼 이분법과 본질주의를 벗어난 사유는 수 세기 동안 일상에 스며들었다. 불교가 1천 년에 걸쳐 인도에서 유라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불교의 경전과 실천은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하면서 사유가 보급되는 데 중요한 수단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본래 중국과 한국 문화에 없었던 ‘우파야’ 혹은 ‘방편’이라는 계율이 있다. 이 원칙은 신자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구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한다. 한국과 중국의 화엄종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것은 보편적인 질서에서 조화롭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는 점이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살은 10가지의 단계를 성취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러 이내 온 우주의 화합을 이루고 존재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불교의 해법을 따라 서구의 트랜스휴머니스트는 반인간중심적인 인간성의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물고기, 닭을 포함해 그 무엇이든 인간성을 찾아볼 수 있다면, 존중해야 마땅하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에 불교는 세계적인 규모로 의학과 보건 담론에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현대 불교 사회, 의례, 명상, 여타 치유의 실천은 생물 의학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지 않고 오히려 보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불교 의학이 강력한 근대화와 세속화의 흐름에 도전을 받는 사이 1963년 일본 대법원은 불교식 치유 의식이 현대 생물 의학적 치료를 보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10 불교식 치료 요법 중 일부, 특히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을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은 신경과학자, 정신과 의사, 여타 생물 의학의 분야에서 진지하게 수용되기 시작했다.

 

기술화된 미래들 

미디어와 매개를 이론화할 때, 기술과 디지털 미디어가 과거 실천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수용되는 다양한 양상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종교와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놀라울 만큼 서로 긴밀하게 작동하며, 의도적으로 엮일 때 사회적, 문화적 실천의 일관된 배치를 구성한다. 여기에는 실재의 구성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우주적인 질문이 개입된다. 사이버 불교의 맥락에서 신자들은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미디어 형식을 활용하며, 현대적 불교의 감성을 통해 이를 개조하고 필터링한다. 이로써 자아와 그 주변, 사회적인 것과 만들어진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창출된다. 사이버 불교 신자는 종교적 사유와 주제를 교환하며 정보, 이미지, 사운드, 사회적 관계, 상품의 흐름에 뛰어든다. 영적인 목적을 위해 물질적인 것을 물신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새로운 특성을 보인다. 불교 신자는 휴대용이고, 착용 가능하고, 전기로 돌아가는 온갖 종류의 경건한 상품을 사용해 물질성의 숨겨진 이념에 맞설 수 있다. 상품화와 소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독실함과 미덕을 세우는 것이다. 종교와 기술은 전혀 다른 지식과 경험의 두 존재론적 영역으로 머물지 않는다. 다른 한편, 현대 소통 기술과 불교 구원의 기술은 종교적 현전을 실현할 때 결합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의 승려들은 컴퓨터 모니터, 인터넷 브라우저 윈도우, 그리고 특히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통해서 새로운 공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중국에서 이러한 전환은 마오쩌둥 시대 이후 시장의 이행이 전개되는 가운데 펼쳐졌다. 마오 이후의 개혁으로 인한 종교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지역의 신앙 생활을 탈정치화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정치적 경제 및 사회적 삶의 정보화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됐다. 첨단 기술의 확장은 중국 공산당과 당의 근대화 전략의 정치적 지배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불교의 사이버 공간은 중국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전자 기반 시설의 일부이다. 현대 중국의 물질주의, 신자유주의가 불러 온 사회적 혼란, 도회인들이 느끼는 도덕적 갈망과 윤리적 야망의 복잡한 관계는 자주 거론된 바 있다. 이러한 갈망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소셜미디어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로서는 공간과 자기 형성의 기회를 열어주고, 수도원 네트워크에 전례 없는 접근과 종교적 지식을 제공한다.

한국 템플스테이 활동의 VR 버전을 캡처한 화면.

사이의 것들

20세기 초 유럽, 미국, 일본 식민 제국에서는 인류, 인간의 사유, 확고하고 자주적인 노선을 따라 전개되는 문명의 발전을 설명하는 사회적 진화론이 만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는 “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경제적 확장을 경험했는데, 일본의 경제가 무섭게 성장했고, 한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이 “네 마리의 호랑이”로 부상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따라잡았다. 1980년대 중국 또한 탄력이 붙었고, 2000년대 초에 세계 무역 기구에 가입하면서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자본주의의 성공으로 인해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은 아시아가 “서구 모더니티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래를 독점하려 한다”며 두려워했다11. 이 두려움이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이라는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대표하는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은 현재까지도 지속돼 동아시아의 도시 경관, 특히 도시를 사람이 없는 공간으로 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도시화는 사이버 펑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듯했다. 동양이 서구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구성됐다면, 테크노-동양은 정보 자본주의와 정보 사회의 밈과 이미지 문화를 규정하기 위해 발명된 개념이다. 

물론 한국, 중국, 일본의 종교인, 예술인, 철학자는 오래도록 인간의 정의에 골몰하고, 20세기 및 21세기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는 가운데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유해 왔다. 이들의 재정의는 때로 휴머니즘의 합리적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과 동물, 자연과 문화의 구분에 도전하는 포스트휴먼적이라 할 수 있는 접근을 택하기도 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갈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됐다. 현대 기술적 시간성을 통해 보정한 불교 사상과 물질성의 오랜 역사는 지적 엘리트층과 대중문화에서 다시 떠올라 미래와 현재에 대한 예측을 도왔다. 따라서 사이버 불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테크노 문화는 갖은 형태의 매개를 통해 본 인간의 집단성을 고려하고 현재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불교와 역사적으로 기술 및 대상화를 정교하게 다뤘던 불교의 유산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이론을 통해 검토해야 한다. 신자의 종교적 경험은 구원, 의미 부여, 인간성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디지털 경전 보관소는 불교 신자들이 클릭 몇 번만으로 스마트폰에 눌려 있는 불교적 아시아의 방대한 문서 및 의례, 독특한 성스러운 힘을 만나볼 수 있게 했다.12 효험 있는 낡은 ‘다라니’가 여전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듯, 디지털 불교는 결코 신체를 떠난 유령 같은 것이 아니다.13 종교, 미디어, 기술, “사이의 것들(things in-between)”은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존재론적으로 분리돼 있지도 않다. 현대 기술과 몸의 종교적 기술은 서로 관통하면서 서로 현전의 물질화에 영향을 끼친다.

로봇 공학과 인공 지능 활용이 증가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은 이를 인간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진보적인 돌파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인간 행위자에게 통제를 넘겨주는 경향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러한 반감은 스마트폰이 친구들의 생일을 외우고, 알고리즘이 온라인 경험을 조율하는 시점에서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제 자동화된 개입이 인간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무한하다. 그렇다면 사유의 양태로서의 테크노 구원은 당연히 종교적 맥락에서 로봇을 사용하는 배경이 된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와 마찬가지로 불교 신자에게 사이보그의 완벽함은 인류의 실패에 대한 해결책이다. 신체의 경이로운 하이브리드와 불교의 기술, 동시대 미술 실천, 게임, 아니메는 사이버 페미니즘과 사이보그 정치의 전략적 잠재력을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14

1신선영(Sun Yung Shin), Unbearable Splendor [참을 수 없이 탁원한] (New York: Coffee House Press, 2016).

2불교의 신격 존재 ‘카논(Kannon)’은 한국과 중국에서 ‘관음’으로 알려져 있다. 시걸 사무엘, “로봇 승려가 축복하고, 제언하고, 장례식까지 집행할 수 있는 AI 종교가 도래하다. 미래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Vox (23 January, 2020), https://www.vox.com/future-perfect/2019/9/9/20851753/ai-religion-robot-priest-mindar-buddhism-christianity.

3‘테크노오리엔탈리즘’에 관해 다음을 참고하라. 데이비드 몰리(David Morley), 케빈 로빈스(Kevin Robins), The Space of Identity: Global Media, Electronic Landscapes and Cultural Boundaries [정체성의 공간: 글로벌 미디어, 전자적 풍경과 문화적 경계들] (London: Routledge, 1995).

4중국과 한반도의 긴밀한 관계는 서력 기원 초기에 중국의 문화가 본토에서부터 점차 침투해 들어 온 중국어 문명권에 포섭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침투는 불교의 전파와 발맞춰 가속화했다. 불교는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과 더불어 중국의 세속적 문화를 한반도에 전해줬다. 방대한 불교 경전은 동아시아 학문에서 공용어로 사용된 중국 문자에 대한 문해력을 길러줬다. 19세기 후반 개신교가 중국과 한국에 전파되면서 과거 세계 종교들(불교, 유교)의 노선, 즉 동아시아 중화 세계의 문화적 교통과 전통적 패턴을 따랐다.

5데이비드 쿠니터(David Quinter), “Modest Materialities: The Social Lives and Afterlives of Sacred Things in Japan,” [소박한 물질성: 일본의 신성한 것의 사회적 삶과 내세] Japanese Journal of Religious Studies, vol. 45, no. 2 (2018), 309–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관음보살(ca. 1220–85)에 대한 내용과 연구는 다음을 참고하라. https://asia.si.edu/exhibition/sacred-dedication-a-korean-buddhist-masterpiece/. 국보 제126호 성물함에 대한 내용은 문화재청 발간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를 참고하라.

6미셸 C. 왕(Michelle C. Wang), “Early Chinese Buddhist Sculptures as Animate Bodies and Living Presences” [생기있는 몸이자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초기 중국 불상], Ars Orientalis, vol. 46 (2016), 13–38.

7“Sacred Dedication: A Korean Buddhist Masterpiece” [성스러운 헌신: 한국 불교의 걸작], https://asia.si.edu/exhibition/sacred-dedication-a-korean-buddhist-masterpiece/.

8한용운, 「인조인」, 『한용운 전집』, 제1권(서울: 신구문화사, 1980), 205–8. 유럽 전통에서 ‘페치(fetch)’와 ‘도플갱어’는 초현실적인 닮은 존재나 살아있는 사람의 환영(幻影)을 뜻한다.

9강민수(Minsoo Kang), Sublime Dreams of Living Machines: The Automaton in the European Imagination [살아 있는 기계에 대한 숭고한 꿈: 유럽의 상상력에 등장하는 자동기계]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10), 6–7. 어쩌면 당연하게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위험할 정도로 닮았지만 더 반짝이는 피부를 갖고 갈수록 동시대 미국 문화의 특정하고, 지역적인 문화적 집착을 드러낸다.

10C.P. 살구에로(C.P. Salguero), “Buddhism & Medicine in East Asian History” [동아시아 역사에서 불교와 의학], Religion Compass, 8, (2014), 239–50, https://doi.org/10.1111/rec3.12113.

11찰리 포크(Charles Paulk), “Post National Cool: William Gibson’s Japan” [포스트 내셔널 쿨: 윌리엄 깁슨의 일본], Science Fiction Studies, vol. 38, no. 3 (November 2011), 479.

12이 링크를 참조하라. http://tripitaka.cbeta.org/. 2015년 CBETA 웹사이트는 거의 모든 불교 경전을 위챗(WeChat)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QR 코드를 제공했다.

13프란체스카 타로코(Francesca Tarocco), “Technologies of Salvation: (Re)locating Chinese Buddhism in the Digital Age” [구원의 기술: 디지털 시대에 (재)이동하는 중국 불교], Journal of Global Buddhism, vol. 18, 155–75.

14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85], “A Cyborg Manifesto: Science, Technology, and Socialist-Feminism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사이보그 선언: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 Simians, Cyborgs and Women: The Reinvention of Nature [유인원, 사이보그, 여자: 자연의 재발견], (London: Routledge, 1991).

BIO

프란체스카 타로코(Francesca Tarocco)는 중국 불교 및 시각물질문화 학자로, 『현대 중국 불교의 문화적 실천(The Cultural Practices of Modern Chinese Buddhism)』, 『현대 제단: 중화 세계의 불교와 과학기술(Altar Modern: Buddhism and Technology in the Chinese World)』(출간 예정) 등을 저술했다. 그녀는 여러 미술 전시 도록 및 간행물에 기고해 왔다. 현재 카포스카리 베네치아 대학교, 뉴욕 대학교 상하이 분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