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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소리로 꿈 꾼 비: 차학경을 읽으며

By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은 강렬한 퍼포먼스와 유작 소설 『딕테(Dictee)』로 잘 알려진 미술가이자 시인이며 사상가다. 그녀는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태어나 12살이었던 1963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끈질긴 과거의 트라우마와 언어의 마력과 기만, 오해에 매료됐던 그녀는 한국의 무속신앙과 프랑스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5행, 고대 그리스 신화, 한국 전후 역사, 종교와 혁명 등 다양한 주제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미술 및 퍼포먼스 작업을 했다. 1982년 『딕테』가 출판되기 고작 몇 주 전에 그녀는 뉴욕 시에서 무참히 강간 당한 후 살해당했다.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그녀가 딱히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나, 그녀의 ‘암시시’ 속에서, 그녀의 시 속 암시 속에서, 그녀가 직조한 모체를 구름, 안개 헤치듯 읽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런 이미지가 걸어 나왔다. 

내가 그 이미지의 실재를 느끼자, 내 안에 ‘비’가 만들어졌다.

그 ‘비’가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가 ‘그녀’를 ‘소리’로 불렀을 때와 꼭 같다.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지냐면, 음악가들이 ‘소리’를 갖고 ‘비’를 부르는 기도를 하고 춤을 출 때와 꼭 같다.

그러면, ‘비’가 목 마른, 메마른 땅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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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기억’이라는 ‘비’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딕테』, 아무 데도 없는 곳, 망명자들이 사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쓰면서. 

“귀환에 대한 갈망.”
“금지된 언어가 바로 네 자신의 모국어”인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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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인, 그녀는 말하는 자, 그 화자를 호명하며 시작했다.

“그 말을 흉내 내는” 자, “말과 닮았을 지도 모르는” 자.

“그것이 속에서 중얼거린다. 중얼거린다.
말한다는 것의 고통 속에서 말하는 것의 고통.”

 “그녀는 다른 이들을 들였다. 그녀의 장소에.
다른 이들이 가득 차도록 했다. 떼를 짓도록.”

“그녀는 잠시 멈춘 순간 속에 머물렀다. 그녀 안에서.”

“그녀는 이를 전하고자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 뮤즈들에게 화자가 돼 달라고,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잠시 멈춘 순간. 소리 내기. 지금 그녀의 것. 적나라한 그녀의 것. 그 소리” 안에서.

그리고 이런 단어를 품고 우리는 『딕테』로 들어간다. 발화로 향하는 그녀의 벌거벗은 여정. 살해당하기 일주일 전에 출판된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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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 첫 번째 소리”라고 말했고,

그녀는 살해당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어머니를 부르며, 그녀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 단어들 속에서 침묵을 느끼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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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차학경의 소설 『딕테』는 1982년에 출판됐다. 그 소설이 출판된 지 일주일만인 1982년 11월 5일에 그녀는 강간당한 후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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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익사하는 걸 들었다. 강간을 당하는 한 난민처럼.
나는 그녀가 추락하는 걸 들었다. 별 빛에 빛나는 물 위로 던져진 하얀 돌처럼.
나는 그녀를 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적은 종이를 건네받는 중얼거림 와중에.

 

친척

나는 들었다. 그녀가 그 곳에 있지 않은 그림자들의 바스락거림을 듣고 있는 걸.

나는 들었다. 아무 것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먼 친척 같은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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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막 만나려던 참에 그녀가 살해당했다.
나는 다른 이단의 여인들과 함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그녀의 비명은 우리에게 닿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강간당한 여인들의 영혼이 내는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
파도가, 다음 범죄를 멈춰 달라 애원하는 비애의 파도가 돼 가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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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 그녀는 이 단어가 적힌 하얀 종이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친척

그녀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관객이다
당신은 멀리 떨어진 나의 관객이다
나는 당신을 부른다
마치 한 먼 친척
누군가가 설명해줘서 겨우 들어본 적, 본 적 있는
한 먼 친척을 내가 부르듯.

당신과 나 그 누구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나를 들을 수 있다고 짐작할 뿐
당신이 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녀는 느꼈다. “관객은 존재함으로써 어떤 형태의 소통을 확립하고 완성짓는 ‘타자’”라고.

간극은 우리가 서로에게 닿으려 헤엄치도록 대양만치 벌어졌다. 우리가 고난의 바다, 고통의 바다, 슬픔의 바다, 고통의 대양에서 만날 때까지 헤엄치도록.

“존재는 없어진 것을 드러낸다. 부재.”

“남은 것이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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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난 후 나는 엑시트 아트에서 오마주로서 그녀의 작품을 재현했다.

나는 큰 토기를 가져가서, 그 속을 물로 채우고, 그 가슴 속에 불을 붙였다.

물 위의 불, 주역 점괘가 말했다.

“웨이 치.
완성 전.

성공하기 직전에 특별히 경계해야 할 테다.”

나는 8살 때 ‘물’ 위의 ‘불’에 대한 꿈을 꿨다.
나는 한 세상이 ‘불’에 휩싸인 걸 봤다. 강과 바다에 불이 붙은 걸 봤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가 꿈이 아니라 보기도 전에 이미 보고 들은 현실을 보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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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생각해요, 학경. 우리와 너무나 가까운데, 고통의 바다 속으로 익사한 학경.
그리고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걸 본다.

나는 타버린 땅, 죽은 강, 죽은 나무와 죽은 개울 사이로 여행하고,
우리가 불바다에 빠져 죽고 있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눈들을 본다.

눈물 없이 흠뻑 젖은 우리의 눈
우리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눈
먼 친척들처럼
나무에게로, 개울로
바다로, 서로에게로
우리를 난민으로 보고 싶지 않은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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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렇게 썼다. “비난 받아본 적 없는 눈들,” 그런데 왜 우리는 죽어가는 삶의 거미줄, 죽어가는 말, 죽어가는 말들의 짜임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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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렇게 썼다.

“서신의 씨앗.”

“아직 터지지 않은 또 다른 전쟁으로부터 벗어날 아직 없는 또 다른 피난처로 가는 것 말고 다른 목적지는 없다. 많은 세대가 그 목적지를 향해 흐른다. 연대기 속 꼬리에 꼬리를 문 속임수들이 그 목적지를 향해 흐른다.

나는 같은 군중, 같은 반란군, 같은 봉기 속에 있을 뿐 변한 것은 하나 없다.”

“저항하기로 결심해 온 자에 저항해 온 자라는 본보기가 되려고 피를 쏟으며 순교당하지는 않겠다고 작정한 당신은 굴복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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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잠시 멈춘 그 ‘순간’ 속에서 기다린다.
그녀 안에서.”

 

 

 

세실리아 비쿠냐
2020년 1월 뉴욕에서

BIO

세실리아 비쿠냐는 시인, 미술가, 영화 제작자, 사회 운동가다. 그의 작업은 생태계 파괴, 인권 훼손, 문화 균질화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기관으로는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Museu de Arte Moderna do Rio de Janeiro), 산티아고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de Santiago), 런던의 컨템포러리 아트 인스티튜트(ICA), 런던의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Whitechapel Art Gallery), 버클리 미술관(Berkeley Art Museum),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 현대미술관(MoMA), 뉴욕의 아트 인 제너럴(Art in General) 등이 있다. 또한 비쿠냐는 22권의 아티스트 북 및 시집을 출간했다. 대표적으로 『Kuntur Ko』(Tornsound, 2015), 『Spit Temple: The Selected Performances of Cecilia Vicuña』(Ugly Duckling Presse, 2012), 『Instan』(Kelsey Street Press, 2001), 『Cloud Net』(Art in General, 200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