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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유라시아 지오픽션: 변환의 모델

By 요우미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지리적, 지정학적 공간으로, 대륙간의 연결 및 다핵적 세계관을 가능케 한다. 세인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크기의 이 땅덩어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개념적 공상 속에 자리 잡으며 여러 대에 거친 왕과 칸의 정복을 통해 확장됐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의 유라시아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권력에 의해 각기 달리 정의된다. 그러면서도 유라시아는 지질학적, 지오포에틱적(geopoetical) 공간으로서 고정된 영토 단위를 초월하고, 현대 사상을 구성하는 규범을 깨뜨리고 재설정하면서, 시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대륙을 여행하던 중, 유라시아의 시공간을 가늠해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개인성, 국적, 시간적 특수성을 벗어난 무언가를 어떻게 ‘상상’(그리고 더욱 유효하게 ‘경험’)하는가? 세속적인 장소, 존재 및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이 지구의 여러 요소 및 움직임에 서린 깊은 시간을 고려하면서 숙고하고 느낄 수 있을까? 프랑스의 무정부주의 지리학자 엘리제 르클뤼(Élisée Reclus)가 “행성 자체와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곱씹어 보면 이러한 질문들이 머리에 맴돈다.1 유라시아는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 광활한 공간,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도록 집적돼 온 각종 행위는 이 땅에서 비롯한 서사화의 윤리를 포괄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 다음에야 우리는 신화 이야기, 고고학적 발견, 개인적 조우, 사변적 이론화 등을 선별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우연히 마주한 오브제들은 ‘지오픽션(geo-fiction)’, 즉 지구와 지구의 지난 흔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환해, 광범위한 시간대와 법의 테두리 안밖의 영역을 가로질러 세대 간 전승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2

우드무르트 가족 토큰. © 우드무르트 공화국 역사문화박물관(Historic and Cultural Museum of the Udmurt Republic) http://xn--80aakpmqy.xn--p1ai/vystavki/v-muzee/pus/

고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중에 방문한 아르트애타지(Artetage) 미술관에서 〈암각화(Petroglyphs)〉(1993)라는 작품이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러시아 동부 마가단(Magadan) 출신의 모더니스트 작가 이고르 도니(Igor Dony)가 제작한 회화로, 고래와 사슴을 선사시대 형식으로 묘사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전형적인 모티프인 사슴은 약 2,500년 전부터 돌에 새겨졌다. 또한 순록은 그 뿔의 모양 때문에 인간과 하늘 신 ‘탱그리(Tengri)’ 간의 소통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해안가에 거주하는 부족들에게 고래는 전통적인 상징이다. 고래는 한때 그 조상이 육지 동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바다로 돌아갔기 때문에 반(反) 모더니즘 포유류라 할 수 있다. 

도니의 작품은 사슴과 고래를 나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 깊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독버섯(학명: amanita mascara)을 섭취한 순록의 소변을 마시고 무아지경 상태에 빠졌다.3 김남수 문화평론가의 주장처럼 사슴이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 고래가 된 것은 아닐까?4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가 제안한 원근법주의에 따르면, 비인간적 주체와 인간은 세상을 동일하게 인식한다. 차이점은 그들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5 어쩌면 사슴과 고래는 똑같은 변천 과정을 거치면서 각자 다른 관점을 체화하고, 샤먼은 무아지경 상태에서 이 과정을  엿보는지도 모른다. 

사슴과 고래의 변신(metamorphosis)에 대한 전설이 완전히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기원전 4세기 도교 고전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북쪽 바다에 몇 천 리나 되는 대어 ‘곤’이 있다. 이 대어가 몇 천 리 길이의 몸뚱이를 가진 새 ‘붕’으로 변해 “솟구쳐 올라 날아가 버리면” 그 날개가 마치 구름과 같다.6 이 이야기에 따르면, ‘붕’은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하늘의 호수, 즉 남녘의 어둠이라 불리는 곳을 향해 날아간다.7 물고기 ‘곤’이 새 ‘붕’으로 변화하는 것은 흔히 형태의 환상적 변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의 신화학자 위안 커(袁珂)는 ‘곤’을 고래(鯨)로 해석한다. 이는 ‘鯨’의 어원인 ‘䲔’이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가진 바다와 바람의 신 ‘우강(禺疆)’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8 학자 양유빈(杨儒宾)은 새 ‘붕’이 봉황일 가능성을 제시하며, ‘바람 풍(風)’과 ‘봉새 봉(鳳)’ 두 글자가 교체 사용됐고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로써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물고기 ‘곤‘과 새 ‘붕‘은 같은 존재이지만 각기 상이한 형태를 나타내며, 이 존재는 변화하는 ‘기(氣)’ 다. ‘곤’과 ‘붕’이 각각 수기인 ‘음(陰)’, 화기인 ‘양(陽)’을 상징하기 때문에 변화는 물리적 형태가 아닌 ‘기’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9

고래의 변신을 원근법주의 혹은 기의 확장 등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든, 우선 이 개념이 변형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와 유사한 비유가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언가를 암시한다. 폭넓게 생각해 본다면, 지리와 공간이 하나의 장대한 변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 먼 옛날, 사람들은 지구 자체를 이야깃거리 삼곤 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경외심을 갖고 세상을 관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 소재로서 인류의 도덕적, 사회적 영역이 더욱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그럼에도 지구와의 연결고리를 간직해 온 전통이 바로 샤머니즘이며,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무속 전통은 땅의 영혼에 역점을 둔다. 이 땅은 선조 수호자들의 지리적 의식(consciousness)이다. 신화와 실제 사이에서 이러한 다양한 공간과 변신은 결국 하나다. 추측해 보건대, 만약 시공간의 차원을 통제하는 규범을 어길 수 있다면, 모든 사물과 존재는 연속적인 변화 속에 있다.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천일야화』의 형식을 빌려 과거와 미래가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10 이말인즉슨, 현재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시간의 차원에서 스스로 무효화시킬 수 있다. 유라시아에서 전승돼 온 수많은 시간 여행 이야기는 우리를 시공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방식으로 유라시아 자체의 복잡한 초지능(superintelligence) 네트워크를 그려볼 수도 있다. 이 네트워크는 대륙 전체를 하나의 감각적 존재로 축소시킬 인격화의 대상이 아니라, 계속되는 여러 변화의 집합체다. 역사적인 분산형 무역 네트워크의 한 사례인 실크로드에 대해 생각해 보자. 1960년대 냉전시대에 폴 배런(Paul Baran)이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를 위해 설계했던 ‘생존 가능한 네트워크(survivable network)’를 비롯한 미국의 군사 통신은 현재의 네트워크 시대를 탄생시킨 분산형 네트워크의 시초가 됐다. 하지만 현존하는 구조의 초기 모델을 찾기 위해 과거에 천착하는 것 마냥 실크로드를 전 근대적 분산형 네트워크로 보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실크로드와 유라시아 대륙이 제공하는 맥락 안에서 시공간은 경계를 넘나들고, 서로를 관통하며, 새로운 신화적 변용을 일으킨다. 이러한 변용은 한편으로는 환상적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는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실크로드를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그에 얽힌 움직임, 유목민적 주체성, 분산된 개체, 책임 등 미래 사회에 변화하는 잠재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요소들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비록 추측과 비유로 가득할지라도 이러한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형태를 재구조화하고, 재프로그래밍하는 도구를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940년 제작된 둔황 성도. 큰곰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unhuang_star_map.jpg

우드무르트 가족 토큰

우랄 산맥에서 완행열차로 12시간 떨어진 곳, 우드무르트(Urdmurtia) 공화국의 수도 이젭스크(Izhevsk)에 있는 박물관에는 피노우그리아(Finno-Ugric) 어족인 우드무르트 공동체의 문화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는 우드무르트의 가족 단위를 나타내는 표식인 토큰이 있다. 박물관 고고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가족 표식은 재산 및 소유물과 관련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야생 벌 떼로 가득한 나무를 발견하면, 나무에 자신의 가족 표식을 남겨 소유물로 삼는다. 이러한 토큰은 토지와 가축뿐만 아니라 전통 직물, 카펫, 심지어 대문에도 표식으로 사용된다. 소련 시대 이젭스크 공장 건설 당시, 이 토큰을 사용해 완성된 작업을 표시하곤 했다. 또한 서류 상 서명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재산의 일부로 매매되기도 했다. 즉, 표식을 팔면 재산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가족 토큰의 기원은 각 부족을 지키는 여성 예언자의 어머니 이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름이 곧 부적이다. 가족 토큰이 여전히 돈의 대체제 역할을 하는 반면, 토큰이 촉진하는 거래는 돈의 기능을 넘어선 것, 즉 표준화된 단일 가치 측정이 아니라 가족을 중심으로 퍼지는 역사, 이야기, 감각 등을 포괄한다. 나무에 새겨진 가족 토큰의 경우, 이 천연자원을 실제 소유가 아니라 민간 관리의 임무이면서 공동자산이기도 한, 혹은 둘 중 하나로 지정한다. 시베리아 타이가에 울창한 산림은 이러한 비금전적 ‘부(富)’를 번성하게 하며, 이 관행을 통해 자연과 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도 두드러진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우드무르트인들은 모든 가족 토큰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이 내린 형벌로 인해 오늘날 사람들은 오직 본인 가족의 표식만을 기억한다. 전 사회의 구성원이 모든 가족 토큰을 아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의 거래는 지금과는 다른 원칙에 근거했을까? 혹은 그 행위를 거래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거래와 유사한 활동에 얽힌 대상들은 매우 다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통 사회의 선물 경제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살펴보면, 가치란 각 개인 간에 금전을 매개로 한 양도 거래 과정에서 그 거래 대상이 되는 “분할 개체들(dividuals)” 중 양도할 수 없는 것들의 순환에서 비롯한다고 여겨진다.11 가족 토큰의 교환은 거래보다는 의식에 더 가까웠을 것이고 수행성을 통해 공동체 내 다양한 역할과 기능의 인수를 가능케 했다. 관련 당사자들은 상호 이질적인 개인이 아닌 분할 개체였다.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역할의 수행적 조성이 장기적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섬세한 유대관계를 구축하는 열쇠다. 이런 의미에서 교환된 선물은 거래의 매개체가 아니라 사회성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이 지표는 분산, 무엇보다도 분배되는데,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이 동일한 지표에 속하게 되고, 이 지표는 누가 어떠한 임시 역할을 맡는지에 따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취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나열해 준다. 이러한 사회적 형태를 “전근대적 블록체인(pre-modern blockchain)”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 블록체인의 경우, 전 세계적 거래 로그의 정확도를 유지하는 데 중앙집중식 감사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가 노드(node)가 동일한 장부의 사본을 가질 수 있도록 로그를 배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아는 사회 형태와 유사하긴 하지만, 이는 자동화된 컴퓨터 과정이며, 따라서 체화된 공동체 형성의 작용 및 수행성이 결여돼 있다. 어떤 면에서 가족 토큰의 전근대적 교환은 공동자산을 의례화하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적 차원의 자원 공동 소유 및 관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질되는 사회에서 교환 가능한 역할의 사회적 지표로서 구축된 것이다. 

 

쿨라이 가마솥

움직임과 변화는 물리적, 형이상학적으로 일어나고 전자는 종종 후자를 무색케 한다. 나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역사적 유목민과 유사 유목민이 생산한 금속 보석 세공품 및 장신구를 접했다. 시베리아 톰스크(Tomsk)의 지역 역사박물관에서는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 사이 쿨라이(Kulay) 문화권에서 생산된 청동 물건들을 발견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물건은 금속 주조용 소형 가마솥이었다. 다른 모든 청동제 사물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메타 오브제인 것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설명에 따르면 유목민은 “실어나를 수 있는 여러 작은 사물에 비골, 금, 은판 및 보석을 부착했다. 이 사물들은 운반하기 쉬울 뿐 아니라, 오직 운동성을 지닌 사물로서 정체성을 가진다. 이러한 장식판들은 자체적으로 이동성이 있고 또한 움직이는 사물들에 수반되는 순수 속도를 표현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12

이 사물들이 계속해서 이동되고 수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산돼야 한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고정된 형식과 내용에 기록하는 것을 넘어 선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물들은 물질적 요소의 상호 변형 및 재조정 과정 속에 존재했다. 물질과 에너지의 연속적 흐름의 일부라는 점, 그리고 개별화 과정이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개별적인 것이 별개의 독립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세력의 변화무쌍한 합성체로 여겨진다면 어떨까? 스스로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봉착하지 않고 개인적 이익을 넘어 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의미 있게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작 동시대 사회에서 그토록 외로워 보이는 우리는 왜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가? 

유라시아 전역의 스텝 지대 지도.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s://www.britannica.com/place/the-Steppe

성도(星圖)와 암각화

이 작은 사물들은 유목민의 이동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목민의 이동은 지형, 동식물, 별 등을 관측하는 데 지침으로 삼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환경을 의식하는 부단한 재세계화는 이동의 윤리를 정립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의 지도는 이 이동의 윤리를 보여준다. 중국 서부 둔황에서 발견된 중세 종이 조각 소장품에는 점괘, 성도, 연감(신적인 에너지와 천체의 힘의 상호작용) 등이 기록돼 있다. 기원후 7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둔황 성도는 그 유형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지도다. 이 성도에는 점성술적 징후와 우주적 정의를 찾으려는 시도로 가득하지만 과학적 산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를 대변한다.13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언어 사학자 아마드 알 잘라드(Ahmad Al-Jallad)가 레반트 남부 사막에서 발견된 고대 아랍 문자 사파이어(Safaitic)를 담은 상형문자를 최근 해독했다. 원래 지명이라고 간주됐던 것이 사실 유목민이 현무암 사막을 거쳐 이동하면서 돌에 기록한 하늘의 장소, 즉 아라비아 점성 좌표로 밝혀졌다. 유목민의 집합적 움직임과 별들의 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소통하는 ‘제3의 움직임’ 등 다양한 움직임에서 유래한 성도는 인간, 지구, 천상계의 평형을 조절한다. ‘제3의 움직임’은 우주를 정적인 공간으로 상정하지 않고 여행자들을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우주 안에 위치시킨다. 공동자산으로서의 ‘제3의 움직임’은 여행자와 우주 사이에 공유되고, 이동에 의해 활성화되며, 이로써 수직, 수평의 우주로 동시에 확장한다.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1,200년), 철기 시대(기원전 500~332년), 돌궐 제국(552~744년) 등 전 시대를 아울러 선사 시대 암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암각화는 때때로 다시 새겨지고, 새로운 표식으로 고대 문서를 완성하며, 그에 달린 주석이 의미 체계를 공유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갖춘 정형화된 고고학이나 역사적 시대의 개념화 없이도 철기 시대 인류는 여전히 인간과 동물 형상을 그들의 청동기 시대 선조로 보았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련의 자율적 활동이 발생한다. 대상을 눈에 익히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고, 이를 돌벽에 기록해 놓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특정한 면면은 무속신앙 의식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세계 곳곳의 암각화에서 발견된 샤먼의 첫 모습은 여러 시대를 통해 유사한 의식을 행하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기존에 제작된 암각화는 후세대 사람들의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소급적, 추측적 비교를 위해, 나는 1990년대 ‘MOO/MUSH/MUD’ 문화의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 텍스트 게임을 떠올려 본다. 이 게임은 모든 플레이어가 다른 사용자를 위해서 환경을 변경 및 재코딩할 수 있는 가상현실 시스템이다. 이러한 텍스트 게임은 디지털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효시였지만, 분산된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이러한 특성은 추후 자생적 디자인과 게임 환경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여러 세계에 대한 집합적 추측, 그리고 이러한 세계들에 대한 텍스트 묘사. ‘MOO/MUSH/MUD’ 게임에서 추측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암각화 또한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존재한다. 이렇게 상상해 본다면, 암각화는 카드를 읽어줄 이가 부재한 채 카드가 분배된 타로 게임과도 같다. 

암각화를 이처럼 유희적으로 해석하면 전체적인 상황의 창조적인 면을 강조하게 된다. 게임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주관적이고 독특한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게임의 세계에 무언가를 제공하거나 기여하는 데 관련돼 있다. 추상적이고 보편화된 가격 이론을 따르지 않는 가족 토큰과 유사하게, 이러한 활동은 우리의 창조력에 가치를 연결시킨다. 이렇듯 대체적 가치 형태에 기초한 사회 형태들을 상상해보면 자본주의의 단일문화에 얽매이지 않은 풍요와 다양성의 경제를 창조하기 위해 교류 방식을 재편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열린다. 이는 자율규제, 의의 및 가치 창출, 분배 등 모든 종류의 관리 방식에서 분권화를 뜻한다.   

상술한 유라시아 지오픽션들은 여러 종류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이 움직임은 영적 영역에서 지구로, 혹은 지구에서 영적 영역으로 수직적이거나, 물질과 에너지의 변형 및 변신을 통해 내포적이거나, 고대의 여러 행위를 현대적, 더 나아가 미래적 사회 형태로 접합시키며 시간을 가로지른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수평 축, 수직 축, 임시 축과 얽혀 깊은 있는 시공간을 연결시킨다. 이렇듯 다양한 움직임은 공간화된 절대적 좌표가 아니기 때문에 선형적 지도에 표시되거나 현대 지도학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 움직임은 신화적이고 융합적인 이야기를 발아시킬 초지능 네트워크의 씨앗을 뿌린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우리의 세상을 여과한다면 어떻게 될까? 변혁의 세상에서 우리의 입지는 어떠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유라시아 이야기들은 각각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이치를 찾는 한 방편으로 전해내려 왔고,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속 모든 개체들이 함께 공생하고 나아갈 어떤 윤리가 형성된다.

1타마라 친(Tamara Chin), “The Invention of the Silk Road, 1877,” Critical Inquiry, 40, 1 (Autumn 2013), 194–219.

2이 중 몇몇 이야기는 2018~2019년 네덜란드 아트 인스티튜트(Dutch Art Institute)에서 최빛나와 함께 강의했던 스터디 프로그램 “Unmapping Eurasia”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유라시아는 어디에도 없지만(nowhere) 지금 여기에(now-here)있다”고 결론지었다. 참조 웹사이트: https://dutchartinstitute.eu/page/11986/2018-2019-coop-study-group-unmapping-eurasia.-tutor-team-binna-choi.

3찰스 니콜(Charles Nicholl), “Getting high,” London Review of Books, 6, 9, 1987년 3월 19일.

4김남수, “Contemporary Talk,”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 기념 강연, 2015년 9월.

5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Exchanging Perspectives: The Transformation of Objects into Subjects in Amerindian Ontologies,” Common Knowledge 10 (2004): 463–84.

6『장자(莊子)』, 영문 참고자료: The Complete Works of Zhuangzi, 버튼 왓슨(Burton Wartson) 역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8), 29.

7위의 책.

8위안 커, 袁珂.中国古代神话 (Ancient Chinese Mythology), (Beijing: Huaxia Publishing, 2006), 58.

9양유빈, 杨儒宾. 儒門內的莊子 (Zhuangzi as Confucian), (Taipei: Linking Books, 2016), 107.

10테드 창, 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 (Burton: Subterranean Press, 2007).

11분할할 수 없는 개인과는 달리 분할 개체(dividual)는 인류학 및 철학에서 하위(sub-individual) 또는 이전(pre-individual) 개인의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i)가 ‘분할 개체(dividual)’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마르셀 마우스(Marcel Mauss) 및 벤자민 리(Benjamin Lee) 추가 참조.

12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 Schizophrenia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 401.

13“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는 육허이(Yuk Hui)가 창안한 개념이다.

BIO

요우미(由宓, Mi You)는 큐레이터이자 쾰른의 미디어 아트 아카데미(Academy of Media Arts)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오랜 연구 및 기획 프로젝트의 주제는 고고학적, 미래적 콘텐츠를 아우른다. 특히 실크로드를 신구의 네트워크를 대변하는 매개체 삼아 이와 관련해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몽고의 울란바토르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Ulaanbaatar International Media Art Festival) 등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최빛나와 함께 리서치, 큐레토리얼 프로젝트 〈언매핑 유라시아(Unmapping Eurasia)〉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기술과 미래에 관한 정치학에 주목해 쾰른의 세계 예술 아카데미(Akademie der Künste der Welt)에서 전시 및 워크숍 〈사이-(노)-픽션(Sci-(no)-fiction)〉을 기획했다. 현재 제13회 상하이 비엔날레(2020~21)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