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星圖)와 암각화
이 작은 사물들은 유목민의 이동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목민의 이동은 지형, 동식물, 별 등을 관측하는 데 지침으로 삼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환경을 의식하는 부단한 재세계화는 이동의 윤리를 정립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의 지도는 이 이동의 윤리를 보여준다. 중국 서부 둔황에서 발견된 중세 종이 조각 소장품에는 점괘, 성도, 연감(신적인 에너지와 천체의 힘의 상호작용) 등이 기록돼 있다. 기원후 7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둔황 성도는 그 유형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지도다. 이 성도에는 점성술적 징후와 우주적 정의를 찾으려는 시도로 가득하지만 과학적 산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를 대변한다.13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언어 사학자 아마드 알 잘라드(Ahmad Al-Jallad)가 레반트 남부 사막에서 발견된 고대 아랍 문자 사파이어(Safaitic)를 담은 상형문자를 최근 해독했다. 원래 지명이라고 간주됐던 것이 사실 유목민이 현무암 사막을 거쳐 이동하면서 돌에 기록한 하늘의 장소, 즉 아라비아 점성 좌표로 밝혀졌다. 유목민의 집합적 움직임과 별들의 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소통하는 ‘제3의 움직임’ 등 다양한 움직임에서 유래한 성도는 인간, 지구, 천상계의 평형을 조절한다. ‘제3의 움직임’은 우주를 정적인 공간으로 상정하지 않고 여행자들을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우주 안에 위치시킨다. 공동자산으로서의 ‘제3의 움직임’은 여행자와 우주 사이에 공유되고, 이동에 의해 활성화되며, 이로써 수직, 수평의 우주로 동시에 확장한다.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1,200년), 철기 시대(기원전 500~332년), 돌궐 제국(552~744년) 등 전 시대를 아울러 선사 시대 암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암각화는 때때로 다시 새겨지고, 새로운 표식으로 고대 문서를 완성하며, 그에 달린 주석이 의미 체계를 공유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갖춘 정형화된 고고학이나 역사적 시대의 개념화 없이도 철기 시대 인류는 여전히 인간과 동물 형상을 그들의 청동기 시대 선조로 보았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련의 자율적 활동이 발생한다. 대상을 눈에 익히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고, 이를 돌벽에 기록해 놓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특정한 면면은 무속신앙 의식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세계 곳곳의 암각화에서 발견된 샤먼의 첫 모습은 여러 시대를 통해 유사한 의식을 행하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기존에 제작된 암각화는 후세대 사람들의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소급적, 추측적 비교를 위해, 나는 1990년대 ‘MOO/MUSH/MUD’ 문화의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 텍스트 게임을 떠올려 본다. 이 게임은 모든 플레이어가 다른 사용자를 위해서 환경을 변경 및 재코딩할 수 있는 가상현실 시스템이다. 이러한 텍스트 게임은 디지털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효시였지만, 분산된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이러한 특성은 추후 자생적 디자인과 게임 환경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여러 세계에 대한 집합적 추측, 그리고 이러한 세계들에 대한 텍스트 묘사. ‘MOO/MUSH/MUD’ 게임에서 추측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암각화 또한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존재한다. 이렇게 상상해 본다면, 암각화는 카드를 읽어줄 이가 부재한 채 카드가 분배된 타로 게임과도 같다.
암각화를 이처럼 유희적으로 해석하면 전체적인 상황의 창조적인 면을 강조하게 된다. 게임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주관적이고 독특한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게임의 세계에 무언가를 제공하거나 기여하는 데 관련돼 있다. 추상적이고 보편화된 가격 이론을 따르지 않는 가족 토큰과 유사하게, 이러한 활동은 우리의 창조력에 가치를 연결시킨다. 이렇듯 대체적 가치 형태에 기초한 사회 형태들을 상상해보면 자본주의의 단일문화에 얽매이지 않은 풍요와 다양성의 경제를 창조하기 위해 교류 방식을 재편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열린다. 이는 자율규제, 의의 및 가치 창출, 분배 등 모든 종류의 관리 방식에서 분권화를 뜻한다.
상술한 유라시아 지오픽션들은 여러 종류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이 움직임은 영적 영역에서 지구로, 혹은 지구에서 영적 영역으로 수직적이거나, 물질과 에너지의 변형 및 변신을 통해 내포적이거나, 고대의 여러 행위를 현대적, 더 나아가 미래적 사회 형태로 접합시키며 시간을 가로지른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수평 축, 수직 축, 임시 축과 얽혀 깊은 있는 시공간을 연결시킨다. 이렇듯 다양한 움직임은 공간화된 절대적 좌표가 아니기 때문에 선형적 지도에 표시되거나 현대 지도학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 움직임은 신화적이고 융합적인 이야기를 발아시킬 초지능 네트워크의 씨앗을 뿌린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우리의 세상을 여과한다면 어떻게 될까? 변혁의 세상에서 우리의 입지는 어떠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유라시아 이야기들은 각각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이치를 찾는 한 방편으로 전해내려 왔고,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속 모든 개체들이 함께 공생하고 나아갈 어떤 윤리가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