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th Gwangju Biennale — Minds Rising Spirits Tu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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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덕준

곽덕준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해 1937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 국적을 박탈당해,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이민자 신분이 됐다. 곽덕준은 어렸을 때 심각한 병을 앓았고, 고통과 회복의 영역이 그의 상상력 넘치는 기운, 정신, 내적 여행, 전복적인 개념주의의 일부가 됐다.

1970년대 실험적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으로 잘 알려진 곽덕준의 회화 시리즈는 그의 초기 작업으로서 기존 작업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전시된 회화 작품들은 도자기 같은 질감을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통해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제작됐다.

곽덕준은 목공용 본드로 코팅한 나무판에 두껍고 튼튼한 석고와 조개 껍질 가루의 표면을 못으로 긁어내어 자유로운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를 담은 즉흥적인 드로잉 작업을 제작했다. 서양의 기법이나 캔버스 회화 작업은 신경 쓰지 않고, 조개 껍질 가루를 사용하고 도자기와 같은 표면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화를 배운 그의 배경을 반영한다.

〈위선자의 미소 667(1967)이나 〈여로〉 연작(1967)에서 유약을 바른 표면에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그려진 선들의 자유롭게 흐르는 곡선과 형태들 사이의 수많은 흉포한 눈들은 샤머니즘적인 주문이나 상형문자를 떠올리게 한다. 멀리서 보면, 회화 작업의 유기적인 형태는 특이한 이미지의 뒤섞임으로 읽히고, 이는 종종 사람의 얼굴이나 몸과 유사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마스크 쓴 얼굴, 여러 개의 눈, 미로 같은 무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의 1960년대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상징은 신체적, 정신적 충격, 정체성의 딜레마, 차별을 극복하려는 그의 정신적 의지력에서 비롯되며, 그의 접근법에는 냉소적인 재치와 다층적인 비전이 있음을 증명한다.

박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