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th Gwangju Biennale — Minds Rising Spirits Tu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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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비

이번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이는 〈빚지지 않은 삶〉(2021)은 재귀반사 시트를 부착한 병풍형 구조물과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도입한 단채널 영상 설치 작품이다. 계층, 겉모습, 나이, 정체성 등 여러 사회적 기준으로 재단돼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감각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 낸다. 특정한 정체성보다 인간 경험의 공통된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김실비는 지구상에서 생사의 순환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에게 덧씌워지는 관념과 행동이 타당한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나고 자란 몸과 마음 그대로도 평안할 수 있는 시대와 장소가 존재하는지, 기술 자본과 생명 공학이 약속하는 미래에는 그러한 세계가 도래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우리는 이념이 무엇을 구획하며 누가 역사의 당위를 마련하는지를 재고함으로써, 주어진 규범적 기준들을 거부해 볼 수 있다. 모든 이종이 공존하는 미래를 모색하기란 그러한 시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다섯 명의 출연자가 부르는 돌림노래는 예기치 않은 화음을 이루고, 그 노랫말은 과거의 편향을 극복하며 누구나 스스럼없이 존재할 수 있는 시공간을 상상한다.

김실비는 2005년부터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한다. 그녀의 작업은 일상 속 정치, 사회 문제를 고민하며, 디지털 제작 과정, , 소리 등을 재료로 다양한 시청각 언어가 현실로 확장된 영상 구조를 실험한다. 〈빚지지 않은 삶〉에서 디지털로 왜곡한 서예 모티프는 점멸하는 플래시의 빛으로 은연히 드러나면서 세포 에너지 및 생물에 내재된 변화의 빛을 상징한다. 이로써 흐릿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대를 거듭해 변혁을 불러 왔던 작은 희망들을 이야기한다.

박주원